2020년 07월 28일 일일명언

2020년 07월 27일 일일명언

조금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일 것이라 믿는다.

-오프라 윈프리-

도전을 위해선 대부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도전 하는 이들에게 응원할 때엔 더욱 마음을 싣게 되는것 같다.

도전하는 이는 분명 어떤 결심을 했을테고, 그 어떠한 위험이든 감수하겠다는 다짐을 했을테니까.

그래서일까, 도전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때엔 내 생각을 말할 기회가 있어도 좀 생각하고 다듬어서 이야기하게된다.
나라는 사람은 도전을 하고 싶어지면 그 어떤 위험이든 감수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위험들을 최대한 피해가려는 사람에겐 어떤 생각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도 존중은 하나, 나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함은 종종, 친분에 따라 결국 이야기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도 한다.

기왕이면 도전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분명 위험이 따르겠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해 본다면 감수한 위험보다 더 큰것을 얻을 것이라고.

이렇게 명언들을 읽고 내 생각을 적어가며 나는 스스로의 잣대를 분명하게 깨달아간다. 그덕분에 요즘의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며 살았는가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사실 요즘의 나는 이상과 현실 속에서, 이상을 제대로 꿈꾸지도 않고 현실을 똑바로 살지도 않고 있다. 그저 게으름에 빠져 핸드폰으로 손가락 운동만 하고 있을뿐. 책을 통해, 에세이를 읽으며 어떤 간접경험을 하지도 않고 소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스마트폰 속의 나와는 큰 상관 없는 뉴스를 읽거나 여러 가십거리들을 본다. 사실 쉬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진짜 현실.

부둣가에 정박하고 있는 배는 분명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이유가 아니라는 말을 기억하자.

나라는 사람은 배의 존재이유처럼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무수히 많고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데, 안정적인 부둣가에 묶여 있는 상황이 마냥 편하다고 머물러 있는 실태이니 분명히 걱정하고 조심하자.

마냥 묶여있는 배는 오히려 태풍을 만나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제대로 힘써보지도 못하고 침몰되어 버릴테니까.
오히려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태풍을 유연하게 피하고, 때로는 활용도 할 수 있는 법이다.

부디 익숙함에 속아 스스로의 본질을 잊지 말자.
익숙함은 언젠가 분명 본질을 건드릴테고, 그때가서 빠져나오려 하면 오히려 늦었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테니까.

2020년 07월 26일 일일명언

적이 생기는 게
인생이 잘못되어간다는 징조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몇 개의 신념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알랭 드 보통-

꼭 적이라고 할것까진 없어도 어쨌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존재한다. 그리고 한 둘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이 있어서 대화가 잘 통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이건 거의 태풍이 어떤 기류에 의헤 생겨나듯,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만나는 경우다.

그런데 적과 같은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것을 의심해보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서 이런 고민도 많고 상황도 많은것 같다.

부디 우리는 한가지 마음가짐을 확고히 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이 중요한만큼
남의 생각도 중요하고,
내가 불필요한 조언을 듣기 싫어하듯
남도 불필요한 조언을 듣기 싫어한다.

일단 나부터 내 생각이 중요함을 인지하였으면, 남의 생각도 그 당사자에겐 가장 중요한것임을 인정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실천한 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동요하지 말자. 내가 나와 남의 생각에 대한 견해를 확고히 정해두고, 남도 나의 생각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없음을 당연스레 생각하자.

인간관계라는 것이 워낙 복합적이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복잡한 관계를 모두 이해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스스로의 신념이 무엇이고 왜 그러한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타인에게도 나처럼 스스로에게 중요한 가치관이 있음을 인정하자.

그렇게 나를 알고 남을 인정하며 살아가면, 최소한 잔소리를 하는 사람보단 경청과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나부터 그리하자. 남이 먼저 내게 해주길 바라지 말자.

그리고 내 생각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 생각이 틀렸는지 여부는 남이 판단하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속에서 결정하게 될테니까.

2020년 07월 25일 일일명언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기꺼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유쾌함의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재능이 있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유쾌하다는 것은 마냥 낙천적인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동의하는 부분.

무슨 일이 되었던간에 인상 찌푸리고 하기 싫은티를 팍팍 내고 있으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라도 잘 안되지 않을까-?

참고 견디며 억지 웃음을 지어봐도 결국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하는 것이니까. 부디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점을 갖자.

기왕 하는 일, 웃으면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분명 더 잘 할 수 있으면서 대충하고 스스로 속앓이 하지 말자. 그 어떤 상황에서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평소 일할때도,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생길때도 일단 열심히 해두고 보면, 당장 그곳에선 인정받지 못할 수 있지만 일단 스스로의 판단은 정확히 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어딘가에서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날이 올것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유쾌하게 살자.

행복해서 웃는 것도 좋지만,
일단 웃으며 지내고 그러다 행복해 지는 경우가 더 많을테니까.

2020년 07월 24일 일일명언

빨간 불이라도
모두가 건너면 무섭지 않다.

-기타노 다케시-

이번 명언은 양면적이다. 극단적인 생각이 모두 든다.

일단 부정적인 생각.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난리인 시기에, 방역에 빨간불이 들어온 이시기에 하나의 종교를 믿는다며 국가의 대책은 믿지 않으면서 종교를 믿기에 코로나 같은건 무섭지 않다면서 집회를 열고 있는 일부 사람들.
빨간불이지만 집단으로 움직이니 무서운게 없나보다. 저렇게 해놓고 집으로 돌아가면 주변 이웃들은 둘째치더라도 자신들의 가족들까지 위험해지리란걸 생각하지 않는걸까..?
무엇을 위해 그들은 이렇게나 극단적인 신앙을 품은 걸까.. 사람은 결국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살아가는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분들에게 이런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걸까...

빨간불이 켜졌으면 부디 파란 불로 바뀌길 기다리면 어떨까. 굳이 빨간불이라도 건너자는 사람의 말을 여러사람이 동조하며 집단으로 건너가고자 해야할까.

나름 긍정적인 생각이라면, 방역의 빨간불이 아니라 국가에 위기상황, 독재와 같은 빨간불이 켜져서 억압당한다고 할 경우엔 그 빨간불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은 하나 하나의 힘을 모아서 어떤 의견을 피력하는 데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부정적인 생각이 워낙 큰가보다.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적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게 맞나 싶고, 저 명언을 만든 사람은 어떤 환경, 어떤 이유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금의 빨간불은 제법 신호가 길다.
지금까지 이정도로 긴 빨간불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신호가 고장난게 아닌지, 사실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은게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의문을 품는 것 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누군들 이 상황이 현실이길 받아들이기 쉬울까.
다만 이 상황이 너무나 현실이기에 거짓말처럼 없었던 일로 만들고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고 방역수칙을 열심히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들까지. 이렇게 서로서로 협력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기인데, 집단으로 빨간불이 켜진걸 뻔히 보았으면서 그 신호를 위반하려 하는건 무슨 의도일까.

부디 마음은 우리와 같으나, 잠시 그 방법을 혼동하였던 것이길 바란다. 그리고 금방 잘못된 방법이란걸 깨닫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동일하게 자가격리를 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길.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협조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와 가족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건강을 챙기길. 추상적인 신념보단 현실적인 우리 상황을 돌아보기를. 부디.

2020년 07월 23일 일일명언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칸트-

행복의 원칙.
행복해지기 위한 규칙..이라고 보면 될까-?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만 하곤 하는데, 사실 이렇게 스스로의 환경을 조성하면 말하지 않아도 이미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행복한 사람 이라도 더 행복하고 싶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 행복을 느낀 사람이라면 행복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느끼느냐 못느끼느냐의 차이로 대부분 인지하지 않을까.

행복해지기 위한 원칙을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볼까.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다행히 어떤 일을 하고 있다.
금전적 보상을 받는, 표면적인 일(출근)을 하고 있고 이외에도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
아침마다 걷고 달리고 일출을 보는 등.
이렇게 내 상황을 적으며 보니 이 원칙들은 실질적으로 어떤 내용에 가까울지 생각해보게 된다.

금전적인 '일' / 자기만족을 위한 '일'
두가지 모두 '일'에 속하지만 행복해지기위해선 경제활동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족을 위한 부분이 크지 않을까.

경제활동을 아무리 잘하고 지갑이 두둑하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사람. 지금 옆에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있고, 지금 당장 옆에는 없지만 평생을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지금. 이번 생은 가족이 제주에도 생긴 기분이 든다. 실제 가정을 꾸리게 된것도 있지만, 11년 전, 대학을 오기위해 내려온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모두가 마냥 감사한 분들이기에.
이 감사하는 마음을 꼭 표현하고 전달하며 살자.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어떤 일.
장래희망도 있고 가족 계획도 있겠지.
그리고 버킷리스트 또 어떤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일단 위에 적은 모든 일들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누가보면 근거없는 자신감일지 몰라도 내겐 지금까지 살아오며 깨닫고 느낀 근거있는 자신감을 통해 만든 희망을.

물론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고 성취해야하는 일이기에 스스로도 이게 허무맹랑한 일들은 아닐까도 싶지만 사람 생각이라는게 하늘의 구름들이 뜬금없이 생겼다가 또 뜬금없이 사라지는것처럼 자주 변하는것이기에, 최대한 스스로가 원하는 무언가를 무거운 추에 매댤아 잠시 방심해도 입김처럼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중.

그리고 아침마다 어두움이 걷히고 밝은 하늘로 변화하는걸 근 100일 넘게 보아와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낙관적인 사람이 된것 같다.

요 근래, 잠시 현실적으로 살아가야하나 싶은 상황이 되었지만, 다시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인생은 현실이지만 미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소설같은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러니 미래까지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준비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그럴거면 일단, 부디 스스로의 행동을 잘 제어해주자. 미래의 희망적인 소설 속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미래의 시나리오는 지금의 내가 써내려가고 있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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