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실제로는 그것이
훨씬 뒤의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미니언 먹로클린-


세월이 흐른 뒤, 사실 우리의 청춘은 아직 진행형이라는걸 깨달을 수도 있지않을까?

지역마다, 나라마다 청춘의 기준이 다른듯하니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느끼는 청춘은 그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 스스로 자신의 청춘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믿는다면
'내가 청춘이었을때 알았더라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하고 후회할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왜 남들의 기준과 정책적으로 정해진 틀에 얽매여 아직도 한창인 스스로의 청춘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걸까-?

아침마다 만나는 하늘은 흐릴때도 맑을때도 있는데 그건 순간이고 그 순간마다에 의미가 있다. 흐리다고 마냥 속상한 일이 아니며 맑다고해서 마냥 기쁘기만 한일이 아니라는 이야기.

우리의 청춘도 흐릴때가 있고 맑을때가 있을뿐
청춘이 시작되는 지점은 있을지 몰라도
청춘이 끝나는 지점은 없다.
누군가 청춘이 끝났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 기준에 맞춰진것이지 그 사람의 시기에 우리의 청춘도 똑같이 끝나는게 아닐거라는 이야기.
그 사람이 공인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청춘이 끝났다고, 이제 청춘은 없다고 한다해서 우리의 청춘도 그 사람처럼 마무리되진 않을테다.

최소한 청춘의 기준을 자신의 마음 속에 두자.
그리고 사실 청춘은 끝나지 않을수도 있다고 마음먹자. 청춘이 끝난다는건, 더이상 꿈꾸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꿈이 없는 사람에겐 화창한 미래가 있기 힘들고 자신의 미래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믿는 이에겐 청춘이란 단어는 이제 떠올리기 힘든 말일테니까.

사람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꿈이란 사치라고 생각할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져있어도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많기때문에, 살아온 환경 때문에 꿈꿀 수 없다는 이야기는 믿고 싶지 않다.

아무리 처한 환경이 끔찍해도
천조자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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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16일 일일명언

당신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마더 테레사-


어쩌면 나는 언젠가 이 명언을 접한 이후로 이 이야기를 내 사명처럼 삼고 사는게 아닐까?

나를 만나는, 나와 어떤 인연으로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단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그 옆에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한다.

그렇게 살아온게 나였고,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내 적성이라며 업을 찾고자 한다. 최소한 그 업은 내 진심을 담아서 할 수 있을 테니까.
운동은 좋아하지만 전문적이지 않고, 컴퓨터 학교를 나왔으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고, 관광분야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관광과 관련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러명을 만나 어울리는 운동을 좋아라 하고, 컴퓨터학교에서 배운 사소한 단축키들이 어떤 업무를 할때에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관광분야를 전공해서 그런지 나는 이 제주도가 좋다. 개발이 아닌 행복으로 모두가 즐거워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쉽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제주에 놀러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 경험과 과제를 하며 습득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일과 완전히 관련있는 일이 아니어도, 이렇게 쏟아낼 수 있는 것들이 일상에 있다. 그런데도 업까지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일로 해야하나...음
나는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바라보니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것 같다. 경제활동을 무엇으로든 하면서, 대신 그 일을 할땐 거기에 제대로 집중을 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즐거워하는 여러 일들을 그 외의 시간에 하면 된다는 조언 한마디가 들려온 듯 싶다.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해야지. 내가 일을 할때만 더 제대로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 일을 할때이든 평소에든 만나는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할 줄 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게 진정한 마음이고 가식이 아닌걸테니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 출근길에 만난 여러 차들도 그러하지. 내가 방어 운전을 한다면 누군가, 불특정 다수 역시 사고가 안날테고 그들도 한두명정도는 나와같이 운전을 더욱 신경써서 할테니까.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것인가 보다. 그냥 일상에서도 매장에서도 운전하는 도로 위에서도.

2020년 06월 15일 일일명언

그저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려고 태어난 것이다.

-헬리스 브릿지스-

우리는 왜 사는가

친구끼리 장난으로 '에휴 왜사냐 인생'
하면서도 진지해지는 주제.

왜 사는걸까. 태어나는것은 의지가 있었다고 보기 힘든데. 태어나고 살다보니 사회에 내던져있는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부정적으로만 방향이 잡힐 듯 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거라면 정 반대로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강하다.

그저 살려고 태어난게 아니다.
-의지에 상관없이 태어났어도 그냥 숨쉬며 살아만 있는게 태어난 의미가 아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려고 태어난 것이다.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태어난것은 나도 모르게 태어났다고 해도,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중에 하나로 나는 태어났고, 가족과 함께 생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어느새 사회에 내던져져, 뭣이 중헌지를 자꾸만 생각해보며 살아가게 된다.

뭣이 중할까. 모두가 그걸 찾느라 온 시간을 쏟는다. 주어진 기회를 전부 사용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걸 모른다. 진짜 중한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대부분 밖에서 찾으려한다. 누군가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뭐가 중요한거냐고.

그 누구의 조언 보다 이 명언이 제일 와닿는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행운이든 행복이든 찾기 위해선, 그냥 기다리면 되는게 아닌걸 사람들은 알까. 가만히 있어도 기분좋게 모든게 만사형통, 잘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아주 소수만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대부분은,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는 사람이 고개만 돌려 바라봐고 울상을 짓고 있는게 보인다.

나라고 그들에게 대단한 조언을 해줄 수는 없다. 나 역시 그 의미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중이니까. 대신 열심히 노력하는 지금의 생활이 확실히 나 자신에게 활력을 준다는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의미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렇게 하면 정말로 인생이 의미있어 지는지.
아침, 아니 새벽 4시 무렵 일어나 날이 밝아오는걸 바라보며 운동장을 달리고 해안가를 걷는다. 이제는 걷기만 하고 있지만 아침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스스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원동력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한 사람, 대단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으니까 일단 겉보기론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더 중요한건 그 껍데기 속의 내가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만족하는가에 있겠지. 나름대로 지금까지 어떤 미라클 모닝을 해왔든 지금이 가장 활발하고 절대적인 습관처럼 이어지고 있다.
새벽 4시.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그 알람을 끄기위해 세면대 앞으로 가서 선다. 정해둔 사진을 찍으며 알람을 끄고, 바로 앞의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 세수를 한다. 밖은 어둡지만 나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음을 몸에게 알려준다.

아침 운동에 필요한 옷차림을 하고, 밝아오는 아침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는 도구들을 챙긴다.

최대한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환경정리를 할 봉투까지 챙기면 출발 준비 완료.
학교까지 걸어서 10여분 남짓, 카메라 설치하고 스트레칭을 하면 5분여가 더 소요된다.
몸이 풀렸다 싶으면, 유튜브로 노래를 튼다. 최근들어 자주 듣는건 가요를 1.5배 정도 빨리 재생하여 모아 놓은 노동요라 불리는 노래들. 달리기 대신 걷기를 하는 아침 운동에 뭔가 모를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노래가 정해지면 갤럭시 워치나 핸드폰으로 걷기 기록 시작. 5km가 되면 안내멘트가 나오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 달리듯 걷는다. 날아가듯 신이난듯 걷는다.

5km를 지났다는 안내가 나오면 서서히 걸음 속도를 줄인다. 완전히 멈추면 신이났던 다리가 갑자기 힘이 풀릴지 모르니, 서서히 신나는 걷기시간이 끝나간다는걸 알려준다. 그렇게 한바퀴 남짓을 더 걷는다.
운동용 장갑을 끼고 철봉 옆에 선다. 촬영 할 핸드폰을 거치하고 촬영 시작.
자세도 어색하고 턱걸이 횟수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시도한다는 자체에 의미를 둔다. 제대로 된 자세로 하기엔 아예 한개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일단 억지로 몇개씩 채워본다. 영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 날 몇개를 했는지, 자세는 어떤지를 보는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있음이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는게 가장 크다. 처음엔 한개도 못하다가 이제 3,4개까지 할 수 있다고 느끼는 부분을 기억이 아닌 영상으로 돌려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커진다.

아직 며칠 안되었기에 변화도 크게 보이지 않지만 당장의 변화를 보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턱걸이를 마치면, 핸드폰을 가로로 돌려 옆에 거치한다.
어깨를 살살 풀어주고 팔굽혀펴기 시작.

바닥도 아니고 손을 짚는 곳도 애매하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시작한다.
처음엔 30개 20개 10개를 해보다
50개 20개 10개로 했다가
이젠 50개 10개 10개 10개 10개... 하는 식으로 진행중

끝으로 갈수록 다리 하나를 앞쪽에 놓아주지 않고는 팔꿈치기 부들부들거려 올라갈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진짜 근육이 생기고 힘이 늘어나는것이란걸 알기에 억지로라도 움직인다. 한 번 더 팔을 접어본다.

그렇게해서 운동이 쌓이면 잠시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에 몸이 반응을 한다. 오늘 운동을 했구나. 많이 움직였구나. 그렇게 스스로에게 인식이 된다.

열심히 보내보고 있는 하루의 아침을 메모해보니 새삼 정말 알차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좋다. 잘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이것을 유지하는것.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하자 !

2020년 06월 14일 일일명언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영화<리틀 포레스트> 中-

부쩍 영화의 명대사, 내가 몰랐던 누군가의 명언을 적을 일이 생기면서 그들의 인생, 그 영화의 줄거리가 궁금해지고 있다. 이렇게 부가적으로 얕지만 넓은 지식이 추가되는 기분.


긴 글을 읽기도 전, 줄거리의 첫 시작이 눈에 띈다.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이라니.

근데 특별하다니.
뭘까 괜찮기에 특별한걸까? 아니면 반어법일까.. 영화니까 우리의 꿈과 희망이 녹아있어서 특별한 청춘인걸까.

궁금한만큼 찾아서 꼭 봐야겠다.

요즘 내가 썩 괜찮지 않아서 그런가ㅜ 하하
절실해지는 청춘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명언으로 돌아보자면, 우리는 너무 팍팍하고 칙칙한 사회생활에 갇혀 사는게 아닐까 싶다. 예전, SG워너비의 <오디너리피플>이라는 노래 '회색빛 건물속에 갇힌 사람들...' 이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분명 새파란 하늘 아래에 지나다니면서 실상은 회색 천장만 하늘인양 매일같이 보며 살아가고 있는것 같으니까

나는 그래도 다양한 천장들을 보며, 출근길엔 나름 새파란 하늘을 일부러 쳐다보며 살아와서 그런지, 항상 언제 어디서든 잘 털고 일어나 여러가지 일을 해온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밝아오는 아침을 만나고 운동을 하면서 지내는데도 살짝 슬럼프에 접어든 느낌이다. 하늘을 보더라도, 흙냄새를 맡더라도 아침마다 운동으로 만나는게 아니라 내게 실질적인 힐링을 주던 무언가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인가보다.

어느새 명언을 재해석했다가 내 식대로 이해를 했다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정리를 한다.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를 기억하고 떠올린다면.'
여기서 이곳은 나에게 힐링이 되는 장소. 혹은 기억.

가장 좋은건 힐링이 되는 장소에서 힐링이 되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러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테고, (대화를 통한게 아니라 스스로의 기억을 떠올리는거니까) 그 혼자만의 시간은 대부분 쉬어야 생기는 여유시간일거야.

우리에게 여유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할까? 대부분 없다고 느끼겠지만 실은 우리가 킬링타임이라 말하는 컨텐츠들로 무수히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없게 만들어버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여유시간은 분명 있다. 그 시간을 핸드폰이 대부분 빼앗아 간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핸드폰을 내려 놓으면 된다.

핸드폰을 내려 놓는 순간 불안함과 걱정스러운 느낌들이 온 몸을 감싸겠지만, 그 기분을 잠시 느끼며 흘려보내고 눈을감아보자. 이정도 되면 눈치챌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을 만드는건 명상에 접어드는 단계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는 어쩌다 명언을 읽고, 옮겨 적고, 그걸 곱씹어보며 이 명언은 곧 명상이다. 라는 결과까지 온걸까. 그건 그냥 '나'라서. 감사하게도 아직 머리가 굳지 않아서. 이제 더는 주변 눈치를 보기 보단 스스로의 마음이 가는데로 살아가고 있어서. 이런 이유들을 들고 보니, 요즘의 내가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알 것 같다. 다만 아직 힐링에 이르지 못했으니 슬슬 움직여봐야겠다. 매일 아침의 운동말고, 내게 힐링을 주는 장소에 찾아가서 멍을 때려야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펼쳐보자.

힐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 거리가 멀든 가깝든, 스스로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만이다. 이 명언은 고향의 향수, 고향의 푸근함으로 돌아가 마음의 평안을 찾아라, 그럼 걱정이 사라질것이다. 라고 말해주지만 내겐 고향으로 가기보다, 정처없이 떠돌며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니까. 혹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녀도 그냥 내버려두고 눈앞의 책에 정신을 팔아버리는 것이니까.

읽지않은 소설책과 읽었지만 너무나 좋았던 자기계발서를 들고 훌쩍 떠나보자. 단 몇시간이라도.

나에게 집중해보자.

2020년 06월 12일 일일명언

주어진 삶을 살아라.
삶은 멋진 선물이다.
거기에 사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이팅게일-

모두의 삶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환경 역시 모두 다르지만 그 모든 삶은 멋진 선물이니 우리는 그 선물에 기뻐하며, 행복하면 그만일것이다.

그런데 부쩍 슬픈 뉴스들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모든 이에게 행복한 삶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삶이 행복이고 선물이려면 그 삶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나 역시 내 삶을 선물로 여기듯 타인의 삶도 그의 선물로 인정해줘야겠다. 나의 삶이 소중하듯 타인의 삶도 그 타인에겐 분명 소중한 삶일테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을 선물로 여기며 살자. 굳이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타인의 삶을 부러워도 말자. 당연히 타인의 삶을 하대하지도 말자.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갈 뿐,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니까.

나는 내 삶을 선물로 여기고 행복하게 매일을 살아가라는 듯한 이 명언을, 이 메시지를 왜이렇게 거대하게 포장한걸까. 이 말을 남긴 사람이 원한게 이런 의도였을까? 그건 이제 알 수 없게 된 일이다. 그저, 나는 나의 생각대로 끄적이고 생각해보는 것 뿐.
글쓴이의 의도, 말한 이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생각을 대략적으로 떠올려볼 수 있다. 이제 그 생각이 무조건 말한 이의, 글쓴이의 의도라고 단정 짓지만 않으면 된다. 내게 내 생각이 있듯 그도 그의 생각이 있었을 테니까. 참 많은 생각들 속에서 산다. 참 많은 인생들 속에서 내 인생을 함께 진행해나가고 있다. 내가 적었지만 나는 과연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부러워한 적이 없었나? 내가 뭔지도 생각치 않고 남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려본 적은 없나? 다행히 딱 ! 그때 그랬었네! 라고 생각할 일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평가하며 지냈을런지 모른다. 그러니 부디, 오늘 이런 이야기를 직접 적은만큼 나라도 남들의 인생은 그대로 존중해주자.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 상관 없다고. 내게 피해가 올것 같으면 그 부분만 의견을 나누면 될 일이다. 그 외의 거대한 이야기들까지 나누려고, 평가하려고 하지 말자. 그럴 시간에 내 인생을 돌아보고 계획해보도록 하자. 남의 인생은 그 남이 살아갈거고, 내 삶은 내가 직접 살아가야 하니까.

2020년 06월 11일 일일명언


기회를 놓치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이 작업복을 걸치고 있어서
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

하자고 마음먹은 일을 계속 미루고만 있는 내게 던져주는 말같다. 내게 온 기회를 일처럼 느껴서 자꾸만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꼬물꼬물 움직여보자고 노력하는 중이니 좀 만 더 힘내보자.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지금 두시간도 잠을 안잤는데도 날이 밝아오는걸 찍겠다며 열심히 밖으로 나왔고, 그곳에서 자연스레 걸음을 떼었고, 그 걸음의 배경음악으로 노동요를 틀어준 덕에 빨리걷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진짜 일터에서든, 취미속에서든, 일상속에서든 우리에겐 정말 많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기회도 그 사이마다 숨어있다. 기회가 너무 적어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변명 할 수 없다.

기회가 작업복을 입어서 일처럼 보인다면 어떻게하면 좋을까? 행복이 꽃말인 세잎클로버들 속에서 행운이 꽃말인 네잎클로버를 찾듯이 세잎들은 뭉게머리면서 네잎클로버만 찾는게 방법일까?
나라면 세잎클로버들 속에서 행복을 가득히 누리면서 우연히 옆에 있던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함께 얻어갈생각이다. 일처럼 보이는 기회 역시 똑같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하자. 그건 응당 우리가 급여를 받으며 제공해야할 노동이니까. 해야할 일을 하는것 뿐이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린 해야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작업복을 입고 있던 기회까지 찾아내게 될것이다. 일거리들 속에 숨은 기회를 찾겠다고 쌓여있는 업무는 처리 안하고 들추어 보기만 하면서 기회를 찾는 사람에게 과연, 기회가 그 모습을 보일까 ?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는게 가장 좋다. 할일을 하다가 기회를 잡고 행복을 누리며 살다 우연히 행운도 잡자.

기회만 찾겠다고 가만히 있는다면 작업복이라도 입고 근처에 숨어있던 기회마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떠나갈것이다. 그 어떤 기회이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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