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31일 일일명언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제노-

자연은 애초에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어찌보면 지구의 본 주인인 셈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나타날지도 얼마 안되었으면서 자연의 위인것 처럼 구는걸까. 놀랍게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자연은 왜 좀처럼 화를 내지 않을까.
화를 내는것 처럼 보이던 태풍과 쓰나미 등등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해하려는 것보다 경고를 주려는 용도가 아닐까?
어느 이상의 개발을 이어간다면 자연의 경고를 듣게 되는것 처럼.
분명 우리는 빠르고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자연에게도 그럴까?

이번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단순히 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조심해야한다는 경고가 아니라, 코로나19로 인간은 불편해졌지만 자연과 동물 식물들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성이라고 생각한 미세먼지도 인간이 공장 🏭 가동을 멈추었더니 맑은 하늘로 나타나주었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베네치아는 온갖 물고기들이 마법처럼 몰려들었다. 그럴리 없을거라 생각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조금이나마 코로나 19가 완화되어서, 혹은 완치 가능한 백신이 나와서 사람들이 이전의 일상처럼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 순간을 기억하긴 할까?

부디, 다른건 몰라도 주에 1회, 월에 2회씩 만이라도 지구를 위하여 모두가 멈추어서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는건 어떨까.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뿌옇던 하늘이 파랗게 칠해져서 그림같을 모습을 바라보면.

모두가 그런다는건 정말 어렵겠지만, 나라도 무언가 지구를 위해 할 일을 해보아야 겠다. 분리수거도 열심히, 주변 환경 정리를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어 지내야겠다.

친구하고 싶은 자연에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매일매일 건내어 줄수있도록.

2020년 05월 30일 일일명언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

-데이비드 흄-

시인 김춘수님의 <꽃> 이라는 시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명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기록하고보니 또 떠오르는 또다른 명언.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이야기
"한 사람이라도 큰 성당의 이미지를 품고 돌무더기를 본다면,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돌무더기가 아니다."

이 명언들, 시에서 알 수 있는게 무엇일까.
나는 저 비슷한 명언과 시들을 각각 읽을때마다, 문득 떠올릴 때마다 내 머릿속 생각들을 돌아보곤 한다. 무언가를 선입견에 사로잡혀 바라 본 적은 없는지.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생각하기를 게을리해서 더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한건 아닌지. 스스로 마음먹는대로 세상을 살아가자고 마음먹었으면서 내 주변에 있는 참 많은 것들의 의미를 무심코 지나쳐가며 살아온것 같다. 시선을 돌릴때마다 만나는 풍경들, 돌, 꽃, 하늘 이 모두가 매일 똑같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가 참으로 대단한 것인데 나는 그걸 '당연하다'여기며 살아온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아무리 바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낼 수 있고, 가족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낼 수 있는 현실. 만약 바쁘다며, 자기는 그렇게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그렇게하지 않아왔다면, 노력은 해봤는지 묻고 싶다. 잠깐 연락 했을때 상대방이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분이 좋아질지를 생각 해봤는지 묻고 싶고, 정말 너무나도 바빠서 연락도 못했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뉴스, 카카오톡을 보는 시간 조차 없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며 있는 순간조차 바쁜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없다고 살아간다. 사실 핸드폰에 빼앗기는 시간만 조절해도 안부연락이든, 스스로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런 일이든, 더욱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안하는걸까 못하는걸까. 그건 그 사람만 알겠지.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하는데 사람의 아름다움 역시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하지 않을까.
당연히 생각하던 하늘을 자주 바라보고 익숙하다고 생각해 놓치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습관을 만들어보자. 분명 전보다 쾌활하고 기분좋은 시간들이 늘어날 것이다. 처음은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점차 쉽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출퇴근 길에 피어있던 무명의 꽃에게, 내가 잘 모르던 들풀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매일매일의 출퇴근 시간을 기다리게 될것이고 산책길에 만난, 쌓여있던 돌탑에 내 마음을 담은 돌을 하나 함께 얹으면 굳이 종교활동을 위해 어딜 가지 않더라도 산책길에 많은 소원을 빌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오래 하고 싶다면 핸드폰에게도 이름을 지어줘보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우리고 출근을 하면 일하기가 싫은데, 핸드폰 역시 그렇지 않을까? 전에는 베터리라도 바꿔 끼워야 해서 돌아가며 쉴수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일체형이라서 주인이 잠드는 시간만 쉴 수 있는 가혹한 현실. 그마저 푹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체로 충전을 당해야 하는 현실. 그 핸드폰의 현실을 함께 생각해주다 보면 내가 혼자 핸드폰을 줄인다는 기분 보다 핸드폰과 함께 멍때리고 쉬어간다고 여길 수 있으리라ㅡ. 핸드폰에게도 쉴시간을 주고 스스로의 눈에게도 피로를 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자.

주변 모든 사물에 마음을 담아 바라보고, 고마워하며 살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자, 주변 환경 없이는 제대로 살기 힘들어하는, 아직은 약한 존재이니까.

2020년 05월 29일 일일명언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욘 없어요.
곁에 좋은 사람만 몇 있으면 된 거에요.

-영화 <위대한 쇼맨>

곁에 좋은 사람을 몇 두고 살아가는 인생.

과연 쉬울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하는것 보다는 괜찮을것 같다. 최소한 불필요한 감정노동은 하지 않을테니까. 곁에 둘 좋은 사람이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무슨 일을 함께 하던, 서로가 각자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그런 사람일테니까. 모두에게 사랑받드려는 행동은 분명 자기 자신의 생각은 사라지게 만들고 표현할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다만 곁에 둘 좋은 사람들이 꼭 '몇'명 뿐일 필요는 없겠지. 대부분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것 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는것이 훨씬 나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다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까지. 나처럼 사람 좋아하고 연락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정도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 두명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며 살아 갈거야.

그러니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몇명있는지, 적은지 많은지를 떠나서 내 주변 모두에게 마음주고 정을 주지는 말자. 외로움과 사랑에 목마른 기분때문에 감정을 퍼주다보면 언젠가 꼭 전해야할 감정을 전할 수 없게될테니까. 감정은 한정적이고 체력과도 관계가 있으니까. 아무에게나 마음주기 보다는 탐색할 줄 아는 눈을 갖고 외로움을 남에게서 풀고싶어하는 마음을 접어두자. 스스로의 외로움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이 직접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챙겨주면서 주변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나를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자. 그들과 만나면 대화도 식사도 불편하지 않고 즐거운 일이 자연스레 많이 생길테니까.

2020년 05월 28일 일일명언

행복의 열쇠 중 하나는
어두운 과거를 잊어버리는 안 좋은 기억력이다.

-리타 메이 브라운-

행복의 열쇠. 어떤 물건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어두운 과거를 잊어버리는 안 좋은 기억력이라고 한다.

'안 좋은 기억력'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느낌의 명언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돌려말하는듯 싶다.

어두운 과거라면 당연히 잊고 싶은 일일테고, 안 좋은 기억력을 가지면 경험한 여러 일들을 쉽게 잊고 살것이다. 그 와중에 어두운 과거만 잊어버릴 수 있는 기억력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 과거에 얽매이고 트라우마에 갇히게되면 자기도 모르게 정체되고 더 발전하지 못할테니까.

다행히 나는 비슷한 부류인듯 싶다. 어떻게보면 안 좋은 가억력 덕분에 포괄적으로, 어둡고 밝은 과거들을 대부분 잊어가며 살아가니까. 붙잡고 늘어지려하면 그것도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대부분의 기억들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다.

그저 밝은 기억들을 과거로부터 잘 보존하고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남기며 사는게 내 기억력에 대한 보조 장치인거겠지?

마치 세상은 발전해서 컴퓨터 용량은 1TB 이상으로 커지고 있는데 내 머릿속은 반대로 역행하는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보조장치로 사진을 찍고, 세상이 발전해서 1TB이상의 외장하드를 구하기 쉬워졌으니까.

머릿속 보단 보관하는데엔 전문이니, 분업을 시켜줘야지. 머리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기만도 벅차고 힘들테니까.

스스로 행복의 열쇠를 한개 더 가지고 살고 있네. 외장하드. 그리고 그곳에 담을 사진들.
방을 정리하고 보기 좋게, 찾기 쉽게 준비하듯이 외장하드들도 그렇게 잘 정리해주자.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도움될 일은 없을테니 최대한 신경을 쓰지 말자.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 친구 덕분에 알게 된 문구인데 늘 공감이 가서 외우게 되었다. 걱정을 하기 싫다면, 그걸 또 생각하고 있을게 아니라 완전 다른 일에 몰두해야한다. 오히려 그 걱정이 떠오르지 않도록 하면 어느새 모두 잊혀져 무얼 걱정하느라 그렇게 진을 뺐던건지 기억도 못하게 될것이다.

슬럼프가 올것 같으면 당장 밖으로 나가 걷기라도 하자.
걱정이 온 생각을 집어 삼키면 좋아하는 책을 집어들고 근처 카페로 향하자. 도서관도 좋다. 어디라도 가서 눈을 완전히 다른 곳에 두고, 최대한 걱정거리와 상관없는 대상을 찾으면 더이상 그 일로 힘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잘 적은 내용들, 일단 나부터 잘 지키자. 경험 많이 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에게 눌려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까. 스스로가 실험대상이 되어 사람들에게 저 이야기를 당당하게 해줄 수 있도록 하자.

2020년 05월 27일 일일명언

창의적인 일 = 기발한 일
기발한 일 = 갑자기, 한 순간?

평소 이렇게 생각하며 지내오기도 했지만 요새들어 일찍 일어나고 아침운동을 다니는 습관을 들여서 그런지 명언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물론 창의적인 일은 심야의 조용한 시간에 홀로 있다가 맞이할 수도 있지만, 사실 새벽의 좋은 시간도 있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만들 수 있는 스스로의 여유시간도 창의적인 일을 만드는데 충분하다.

그러니 창의적인 일,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다른이들과 다른 시간대에,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로 지내기 보다는 남들처럼 지내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건 곧 부지런하다는 것. 왜냐하면 규칙적인 사람일수록 스케줄 관리에 능하고 시간 계획을 한다는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중 일을 위한 시간과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나누어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창의적인 일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오랜 기간동안 누적 횟수로 보았을때, 예를 들어 한달간 규칙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 창의적인 일을 10번 했다면 규칙적이지 못한 사람은 가끔 한 두번, 길어야 5,6번 정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횟수는 평균잡을 수 없이 불분명해질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걸 마냥 기다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살아간다면 창의적인 일만 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조정할 수도 있고, 창의적인 일을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상황을 때에 따라 만들어 놓을 수 있다.

그러니 기억하자. 창의적으로 살고 싶다면 일단 자신이 몇시에 잠들고
몇시에 일어나
몇시에 학교를, 회사를 가고
몇시에 밥을 먹는지
몇시에 하교, 퇴근을 하고
몇시까지 무엇을 하다가
몇시에 잠이 드는지

아무렇지 않은 일상같고 다 똑같다고 생각할지라도 꼭 이렇게 시간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메모해 스스로 느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사실은 아주 많은 시간이 있었다는것을. 하지만 그걸 상당히 많이 놓치며 살았다는 것을. 다행히도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의 시간을 관리하면 앞으로를 알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로만 계획을 짜고 실행할 것이다.

그렇게 분명 성공할 것이고,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2020년 05월 26일 일일명언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라.
그것이 좋은 삶에 대한 모든 철학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일까, 해야만 하는 일일까.
아마 둘다이겠지. 그 중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겠지.

해야만 하는 일은 어쨌든 하면서 살아가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하는 일에 밀리고, 피곤함에 치이고, 경제적 상황과 주변 시선에 주눅들면서 대부분 하지 못했을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자.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은 보통 직장에서 혹은 속한 환경에서 반드시 해야하기에 하는 일이라 어쨋든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경제력을 키워주고 사회성을 좋게 만들어 줄지는 몰라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시작을 나로부터 해야한다.

나로부터 생각되어진 하고 싶은 일은 분명 내가 좋아하거나 즐거워 할 일일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다만 피곤하다며, 귀찮다며 핸드폰을 보는걸로 대신해왔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고 싶었던 일은 잊혀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항상 남아 있다. 피곤함에 가려져 있을뿐인 이 하고 싶은 일을 끄집어내라. 피곤해도 일단 시작해봐라. 알고보면 피곤해서가 아니라, 아직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로 정하고 하나하나 해나가는 순간부터 행복도 불어난다. 몸이 힘들지라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며 피로가 안 풀린 느낌이 들어도 '나오길 잘했다.' '역시 하길 잘했다.' 하고 정신이 들 것이다.

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하는걸 따라하고, 회사가 시킨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가.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싶은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순간의 피로감과 순간의 게으름에 빠지지 말자. 그 순간만 이겨내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면 금방 과거의 내가 안타까워질테니까. 그 피곤함은 운동으로 풀고, 취미 생활로 푸는거였고 좋아하던 책을 읽는 순간이 핸드폰을 보며 멍때리고 시간죽이기를 하던 순간보다 만족감이 더욱 높을 것이란걸 깨달을테니까.

훗날 돌아본 스스로의 삶이 '좋았다', '만족한다' 고 느낄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움직이자. 멍때리던 시간은 명상으로 바꿔보고 핸드폰을 보며 킬링타임을 하던 시간에 밖으로 나가 걸어보자. 핸드폰을 보더라도 누워있거나 어딘가에 기대어 있지말고 그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서 운동을 하든, 관심있던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가 좋은 커피향과 그 분위기를 느끼든, 수영, 테니스, 승마, 골프, 걷기, 달리기 등 원하던 활동을 해보자. 사실 시작이 어렵지 유지는 이어가기 쉽다. 그 시작을 좀 더 쉽게 하는 방법은 생각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일단 하자. 하고 생각하기로 하자. 새벽에 산책을 가기로 했다면 일단 집밖으로 편한 옷과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부터 하자. 생각은 그때부터 해도 늦지 않다. 일어난 직후부터 산책을 나가기 직전까지의 순간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자. 변명과 걱정만 불어날테니까. 비가와서, 바람이 불어서, 추워서, 더워서... 별의 별 이유로 게으름에 다시 빠지게 될테니 고민걱정은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나간 후에 시작하자. 사실 그 고민 걱정이 현실화 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부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하자.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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