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1일

자기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간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알랭 드 보통-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그래야, 매순간의 위험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생을 이어나갈테니까.
그리고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 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는나고 한다.

그 불안이란 걱정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안속을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불안 속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불안한지 아닌지 모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계속 움직이고 불안을 느끼며 새로움을 찾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할 수록 불안도 커지긴 하지만, 그만큼 이룰 수 있는 목표의 크기도 커진다.

그만큼 큰 사람이 될것이라는 이야기.

그러니 두려움과 불안에 마냥 떨기만 하지 말자. 어차피 극복해야하고 헤쳐나가야할 삶중의 일부일 뿐이다.

꾸준히 높은 삶의 기준을 목표로 삼고
피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자.
피할 수 없는 불안은 계속 극복해가면서
더욱 큰,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아가자.
어느새 그 불안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증폭시켜주는 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 그 날까지.

그걸 깨닫고 나면 더이상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을 것이다.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고 그 어떤 위험과 걱정이 동반되어 와도 이걸 극복하면 더욱 큰 성취를 해낼 수 있으리란걸 누구보다 잘 알테니까.

2020년 06월 20일 일일명언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밖에 없다.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죽음을 준비한다 라는 개념.
훌륭한 인생을 살기위해, 훗날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감사보다 후회가 더 적을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늘 조심히 지내야 하지만 나 혼자 조심한다고 완벽히 안전하다고도 볼 수 없는 삶이라고들 하는 세상

그 와중에 어쨌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걸 하자는 이야기일테지.

생을 훌륭하게 살아내면, 정말 어떤 안타까운 일이 생기더라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덜할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위험보단 안전함에 가까워 지기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면 죽음을 준비하면서 건강하고 만족감이 넘쳐흐르는 생을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세상은 워낙에 역설적인게 많아서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를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택하는 것일뿐. 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인가부터 이렇게 명언을 적고 내 단상을 아래에 끄적여가는 일상을 만들길 잘한것 같다.

명언에 따라, 그 명언을 읽은 후 내 생각에 따라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풍부하게 느끼기 때문에.

명언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걱정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유가 있는 일이니 '그저 넌 네 갈길 잘 가면 된다.' 라고 말해주는것 같달까.

이렇게 시작할 때에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싶던 마음들을 이런 순간마다 인정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역시나 좋다.

오늘도 참 좋은 시간이다. 좋은 하루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게 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사라졌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훌륭한 인생의 일부니까.

2020년 06월 19일 일일명언

 사람들은 시간이 영원하길 기도하지만,
사실 영원한 시간은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열정에 기름붓기-

노래 중독인가..? 글 쓰려고 하면 노래 가사를 먼저 흥얼거리게 되네 ㅋㅋㅋ

영원한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하는 빅뱅의? 노래.

영원한 시간.
그건 행복한 시간만 영원하길 바라는걸까
인생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영원함일까?

시간을 메인주제로 삼았던 영화 <인타임>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고 외모까지 청춘의 베스트인 상태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결국 그 넘쳐나는, 영원하다 할 수 있는 삶의 시간을 덧없다는 듯이 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절대적인 변화를 갖게 되는 힘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그는 과연 그 영원에 가까운 삶이 행복했을까? 불행했기에 그렇게 결국 생을 마감했을까?

그의 마지막을 돌이켜보면 우리도 영원히 살것처럼 살되, 그 영원함이 자기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 세상이 영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할것 같다.

그는 결국 정신이 올곧고, 아무 낙없이 살아가던 자신을 도와준 주인공에게, 믿을수 있는 후대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것를 물려주었고 주인공은 그 덕분에 불합리하던 세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던가.

'내' 인생이 영원하길 바란다면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게 될테지만, '우리'의 인생이 영원하길 바란다면 마음의 그릇은 더욱 넓어지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은 더욱 자주 느낄 수 있게되지 않을까?

'내'인생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명언처럼까지만 해두자

세상이 영원할것처럼 꿈꾸고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오늘을 살자.

꿈꾸는 일은 멈추지 말되 언제 세상이 끝날지 모르니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자.

영원을 꿈꾸면 나태해질테니
당장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자.

2020년 06월 18일 일일명언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지난날은 아무것도....

라고 쓴지 하루 지났는데, 그 사이 무어라 쓰고 싶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는 이렇게 될걸 예상했을까? 아마 전혀 몰랐겠지.

이제와서 돌아보는 어제조차도 정말 짧고 의미있게 보낸 덕분에 아름다웠는데 어제의 나는 알았을까? 운동하느라 숨차던 순간을 그저 빨리 끝내고 싶었던건 아닐지. 턱걸이를 하나만 더 했으면, 팔굽혀펴기를 요령없이 전부 할 수 있다면 좋지않았을까 생각했을 어제의 나.
단 하루 지난 오늘 돌아봐도 그렇게 노력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이런 글을 읽고 쓰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부터 지금의 내게 격려해주고 싶다. 다그치는 일은 누군가 내게 한다면 그만큼 게을러서 그런걸테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이러는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 일단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밖으로 나서서 움직이고 있으면서 나를 다그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다그치지 않고 멀쩡하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고 응원을 해주려나.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그만 다그치자.

할 일이 많지만 그건 내가 그만큼 부지런히 일을 많이 벌인것도 있는거니까.
그만큼 일을 벌일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있는거니까.

분명 내게 닥친 상황이 (두건의 스크립트 작성?)
주어진 시간에 비해 큰 과제처럼 느껴지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긴 하지만 내가 어련히 잘 하지 않을까.
분명 잘 해낼거니까 그 일에 몰입할때만이라도 아무 생각말자.

그리고 앞으로 매일 아침마다라도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자.

잘하고 있다. 종광아


아부지도 말씀하셨지

네 뒤엔 아빠, 엄마가 있어.

네가 원하는 길을 가.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거야.

아빠 엄마가 믿으니까. 힘내고. 사랑한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어떠셨을까. 우릴 키우느라 아름답게 보냈어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진 않았을까.

아직 늦지않았고 지금부터가 우리 부모님이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실 수 있는 시기일거란 생각이 든다.

내사 지금 하고 있는 일들만 제대로 해도 우리 부모님의 인생이 찬란하게 빛나도록 해드릴 수 있을터다.

그러니 후회같은 단어는 생각도 하지말고
움직이자.
일에서도 스스로 원하는 일상에서도
몰입하자.

2020년 06월 17일 일일명언


상식으로 생각해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해라.

상식으로 가능한 범위라면

결국 그것은 평범한 것이다.

-손정의-

 

상식으로 생각해서 해결책이 안나온다. 그렇다는건 아마 지금까지 겪어본적 없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명언을 말한 손정의님은 이런 상황이 절호의 찬스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걸 찬스라고 생각치 못하고, 나는 왜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하면서 자책하고 지내지는 않나?

상식으로 가능한 범위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테고,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내가 필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나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식으로 가능하지 않은 범위라면 자주만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기회란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도 않는 찬스가 내게 걸어들어왔는데, 그걸 좌절하며 포기만한다면 그 찬스는 물론 또다른 기회까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아니, 스스로 기회를 볼 수 있는 눈을 잃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단순하다. 그냥 모든것을 기회라고 생각하자. 아주 가벼운 일같아도 내가 직접 해보고,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걸 어떻게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이제 세상에는 새로이 창조할 수 있는 물건은 극히 드물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건은 무에서 유로 생겨난게 아니라, 있던 것을 조금씩 모방하고 새롭게 개조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기회역시 그렇지 않을까? 알고보면 주변에 있던 사소한 물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발상을 더하면 창조가 되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렇게 기회란 주변에 무궁무진한 일이니, 부디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자.

사소한 일에도 몰입하고, 잘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손을 놓기보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을 마음가짐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는 끈기를 가져보자. 누가 아는가? 그 잠깐의 끈기로 세상에서 우러러볼 기회가 나타날지.

2020년 06월 16일 일일명언

당신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마더 테레사-


어쩌면 나는 언젠가 이 명언을 접한 이후로 이 이야기를 내 사명처럼 삼고 사는게 아닐까?

나를 만나는, 나와 어떤 인연으로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단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그 옆에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한다.

그렇게 살아온게 나였고,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내 적성이라며 업을 찾고자 한다. 최소한 그 업은 내 진심을 담아서 할 수 있을 테니까.
운동은 좋아하지만 전문적이지 않고, 컴퓨터 학교를 나왔으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고, 관광분야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관광과 관련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러명을 만나 어울리는 운동을 좋아라 하고, 컴퓨터학교에서 배운 사소한 단축키들이 어떤 업무를 할때에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관광분야를 전공해서 그런지 나는 이 제주도가 좋다. 개발이 아닌 행복으로 모두가 즐거워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쉽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제주에 놀러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 경험과 과제를 하며 습득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일과 완전히 관련있는 일이 아니어도, 이렇게 쏟아낼 수 있는 것들이 일상에 있다. 그런데도 업까지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일로 해야하나...음
나는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바라보니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것 같다. 경제활동을 무엇으로든 하면서, 대신 그 일을 할땐 거기에 제대로 집중을 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즐거워하는 여러 일들을 그 외의 시간에 하면 된다는 조언 한마디가 들려온 듯 싶다.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해야지. 내가 일을 할때만 더 제대로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 일을 할때이든 평소에든 만나는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할 줄 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게 진정한 마음이고 가식이 아닌걸테니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 출근길에 만난 여러 차들도 그러하지. 내가 방어 운전을 한다면 누군가, 불특정 다수 역시 사고가 안날테고 그들도 한두명정도는 나와같이 운전을 더욱 신경써서 할테니까.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것인가 보다. 그냥 일상에서도 매장에서도 운전하는 도로 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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