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3일 일일명언

당신이 되고 싶었던 어떤 존재가 되기에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조지 엘리엇-

되고 싶은 어떤 존재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7일에 미리 저장해서 8일 아침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느낌. 이렇게도 좋다)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걸까?

돈 많은 사람
인맥 넓은 사람
유명한 사람

이런것들은 아니란게 느껴진다.

느낌적인 느낌이란게 있는 법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라는건 욕심인거 이제 잘 아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되는 존재?

스스로 살고 싶은대로 살았고
그 와중에 사람들과 어우러졌으며
내가 가진걸 나누고
다른이들이 가진걸 감사히 공유받으며 살아간 존재?

명언처럼만 되어도 좋겠다.

내가 태어날때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울었다.
내가 죽을때 나는 웃고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죽음이란, 아무리 숭고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해도 그를 잃는 사람들에게 슬픔이 자리잡는건 당연할테니까.

그러니 외국의 어느 분도,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관속에 갇힌것 처럼 음성을 녹음해서 장례식을 할때 틀었던거겠지. 슬픔속에 있었겠지만 조금이나마 자신을 유쾌한 사람이었다는걸 잊지 말라고. 그는 이제 땅속에 묻혀 지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테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속엔 늘 쾌활했던 가족, 친척, 이웃, 친구였노라고.

일단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한 준비 중이다. 그럼 목표를 분명히 해야겠지.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

지금 운동 하며 일기 쓰는게 앞으로는 당연한 일상인 존재?
내가 받는 사랑들이 당연한게 아니라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란걸 항상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존재?

이렇게 살아가는, 이런 존재이려면 역시나 내가 먼저 움직이면 된다.

사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는건 나 스스로, 자신이 하는거니까. 그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행동해야겠지.

목표를 세우고 원하는 일을 하고자 움직이는것과 다를것이 없다. 그 목표가 좀더 거대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작은 존재이니까.
큰 존재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존재감을 가진 이가 되려면 일단 스스로를 키워야겠지.

최소한 스스로 생각하고 말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어야 겠다.

2020년 06월 22일 일일명언


이 모든 얘기가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이 순간이 추억은 아니야.
살아있는 순간이야.

-영화 <월플라워> 中-

지금 이 순간은 분명 지금이다.
돌아보면 '지금'도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리지만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은 살아있는 순간이다.

찰나의 순간 같지만 이 시간을 잘 붙잡으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인생이 짧고 길고를 떠나서 사람들은 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 순간들을 추억으로 바꾸어 회상하며 살아간다.

함께한 어느 누구 덕분일 수도 있고
어딘가 여행하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뭔가 강렬한 인상이 필요하고 누군가가 함께했어야 할까?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싶다.

혼자서도 충분히 좋은 추억은 생성해 낼 수 있다.

사실 추억 자체는 자동 생성이다.

그 지나쳐온 수많은 추억들 중에서 '좋은 ' 혹은 '나쁜' 이라는 인식과 느낌으로 추억을 포장해버리는것 뿐.

그와중에 선택받지 못한것들은 종종 꿈에나 나오거나 기억속에서 잊혀지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잊혀지는 추억 역시 좋은 추억일 수 있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일일 수 있다. 단지 너무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니 깜빡, 놓친것일뿐.

그러니 기록하자. 사진으로 찍고 눈에 보이게 두자.

두고두고 보면서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내 모든 시간들이
나의 모든 순간들이

추억으로 저장되고
스스로 좋았던 추억이었노라
원할때마다 돌아볼 수 있도록

2020년 06월 21일

자기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간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알랭 드 보통-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그래야, 매순간의 위험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생을 이어나갈테니까.
그리고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 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는나고 한다.

그 불안이란 걱정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안속을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불안 속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불안한지 아닌지 모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계속 움직이고 불안을 느끼며 새로움을 찾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할 수록 불안도 커지긴 하지만, 그만큼 이룰 수 있는 목표의 크기도 커진다.

그만큼 큰 사람이 될것이라는 이야기.

그러니 두려움과 불안에 마냥 떨기만 하지 말자. 어차피 극복해야하고 헤쳐나가야할 삶중의 일부일 뿐이다.

꾸준히 높은 삶의 기준을 목표로 삼고
피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자.
피할 수 없는 불안은 계속 극복해가면서
더욱 큰,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아가자.
어느새 그 불안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증폭시켜주는 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 그 날까지.

그걸 깨닫고 나면 더이상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을 것이다.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고 그 어떤 위험과 걱정이 동반되어 와도 이걸 극복하면 더욱 큰 성취를 해낼 수 있으리란걸 누구보다 잘 알테니까.

2020년 06월 20일 일일명언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밖에 없다.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죽음을 준비한다 라는 개념.
훌륭한 인생을 살기위해, 훗날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감사보다 후회가 더 적을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늘 조심히 지내야 하지만 나 혼자 조심한다고 완벽히 안전하다고도 볼 수 없는 삶이라고들 하는 세상

그 와중에 어쨌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걸 하자는 이야기일테지.

생을 훌륭하게 살아내면, 정말 어떤 안타까운 일이 생기더라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덜할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위험보단 안전함에 가까워 지기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면 죽음을 준비하면서 건강하고 만족감이 넘쳐흐르는 생을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세상은 워낙에 역설적인게 많아서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를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택하는 것일뿐. 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인가부터 이렇게 명언을 적고 내 단상을 아래에 끄적여가는 일상을 만들길 잘한것 같다.

명언에 따라, 그 명언을 읽은 후 내 생각에 따라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풍부하게 느끼기 때문에.

명언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걱정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유가 있는 일이니 '그저 넌 네 갈길 잘 가면 된다.' 라고 말해주는것 같달까.

이렇게 시작할 때에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싶던 마음들을 이런 순간마다 인정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역시나 좋다.

오늘도 참 좋은 시간이다. 좋은 하루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게 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사라졌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훌륭한 인생의 일부니까.

2020년 06월 19일 일일명언

 사람들은 시간이 영원하길 기도하지만,
사실 영원한 시간은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열정에 기름붓기-

노래 중독인가..? 글 쓰려고 하면 노래 가사를 먼저 흥얼거리게 되네 ㅋㅋㅋ

영원한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하는 빅뱅의? 노래.

영원한 시간.
그건 행복한 시간만 영원하길 바라는걸까
인생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영원함일까?

시간을 메인주제로 삼았던 영화 <인타임>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고 외모까지 청춘의 베스트인 상태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결국 그 넘쳐나는, 영원하다 할 수 있는 삶의 시간을 덧없다는 듯이 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절대적인 변화를 갖게 되는 힘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그는 과연 그 영원에 가까운 삶이 행복했을까? 불행했기에 그렇게 결국 생을 마감했을까?

그의 마지막을 돌이켜보면 우리도 영원히 살것처럼 살되, 그 영원함이 자기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 세상이 영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할것 같다.

그는 결국 정신이 올곧고, 아무 낙없이 살아가던 자신을 도와준 주인공에게, 믿을수 있는 후대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것를 물려주었고 주인공은 그 덕분에 불합리하던 세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던가.

'내' 인생이 영원하길 바란다면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게 될테지만, '우리'의 인생이 영원하길 바란다면 마음의 그릇은 더욱 넓어지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은 더욱 자주 느낄 수 있게되지 않을까?

'내'인생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명언처럼까지만 해두자

세상이 영원할것처럼 꿈꾸고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오늘을 살자.

꿈꾸는 일은 멈추지 말되 언제 세상이 끝날지 모르니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자.

영원을 꿈꾸면 나태해질테니
당장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자.

2020년 05월 31일 일일명언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제노-

자연은 애초에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어찌보면 지구의 본 주인인 셈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나타날지도 얼마 안되었으면서 자연의 위인것 처럼 구는걸까. 놀랍게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자연은 왜 좀처럼 화를 내지 않을까.
화를 내는것 처럼 보이던 태풍과 쓰나미 등등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해하려는 것보다 경고를 주려는 용도가 아닐까?
어느 이상의 개발을 이어간다면 자연의 경고를 듣게 되는것 처럼.
분명 우리는 빠르고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자연에게도 그럴까?

이번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단순히 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조심해야한다는 경고가 아니라, 코로나19로 인간은 불편해졌지만 자연과 동물 식물들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성이라고 생각한 미세먼지도 인간이 공장 🏭 가동을 멈추었더니 맑은 하늘로 나타나주었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베네치아는 온갖 물고기들이 마법처럼 몰려들었다. 그럴리 없을거라 생각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조금이나마 코로나 19가 완화되어서, 혹은 완치 가능한 백신이 나와서 사람들이 이전의 일상처럼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 순간을 기억하긴 할까?

부디, 다른건 몰라도 주에 1회, 월에 2회씩 만이라도 지구를 위하여 모두가 멈추어서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는건 어떨까.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뿌옇던 하늘이 파랗게 칠해져서 그림같을 모습을 바라보면.

모두가 그런다는건 정말 어렵겠지만, 나라도 무언가 지구를 위해 할 일을 해보아야 겠다. 분리수거도 열심히, 주변 환경 정리를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어 지내야겠다.

친구하고 싶은 자연에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매일매일 건내어 줄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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