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30일 일일명언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번째 봄이다.
-알베르 카뮈-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2020년의 진짜 봄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기세 없는 2020년 07월 15일 아침.

봄, 그리고 가을.

어찌보면 불과 작년까진 당연한 계절이었던 것이 어느새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알베르 카뮈라는 분에게 계절은 시간지나면 다가오고, 자연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라 생각한것일까-?

나도 계절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기도,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자연은 그 누구에게든 긍정도 부정도 아닌듯 하다. 그저 세상의 순리대로 존재하는것일뿐

그러니 공룡도 멸망하고 수많은 지구의 모습들이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른게 아닌가.

인간이라고 그걸 거스를수는 없을듯 싶다. 어떻게든 거스르겠다고 하우스를 짓고, 바다를 흙으로 메우고 있지만 그 기반 자체가 자연이라는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들.

제주도의 자연이 그대로라서 사람들이 그 순수한 자연을 보러 여행오길 바라는 모습과 같다. 자연도 있는 그대로 두면서, 제발 지속가능한 개발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어째서 지속가능한척하면서 결국 이득을 챙기기 위해 개발을 위한 개발을 일삼고, 환경은 뒷전인걸까.

결국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린 모습이지만
결국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깨달을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세상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변화를 모색하는 한가지 조언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 공존해 살아가는게 어떨까.
이번에 코로나19가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바이러스이지만 지구와 자연 환경에는 치유제가 된 것처럼.

우리 나름대로 백신을 찾되, 우리로 인해 안개속에 가려져버렸던 자연에게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한다고 나역시 일회용품 당장 안쓰고 샴푸같은걸 안쓰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 그러니 일단 할 수 있는거라도 하며 살자.

귀찮아도 분리수거는 무조건 제대로 하고 일회용품, 비닐봉투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자.

아직 나도 부족한것 투성이니 노력하자.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어 당연한 일이 될때까지

2020년 06월 29일 일일명언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권력의지가 없고,
권력이 우선하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

-칼 융-

권력. 사람에게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심어주는 힘.
누군가에게 꼭 권력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갈까-?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무언의 합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데 이걸 공표하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걸까?

우리는 국가의 어떤 선택과 결정을 맡기기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투표해서 뽑고, 그들은 국민의 다수가 선택하여 나라를 위해 일한다.
근데 왜 그들은 선거철에만 국민에게 잘보이려하고 선거가 끝난 후엔 권력이라는 힘만 휘두르며 살아가고 싶어할까?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다수가 그런 현실이기에 속상하기도 의문스럽기도한 현실.

어찌보면 권력이라는 것을 잘 못 쥐어주는 경우 그것을 사랑과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 못하고 사랑은 잊은채 권력만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미 전제가 잘 못 된게 아닐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가 되어, 도와 시, 그 지방자치단체의 대표가 되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월급과 처우와 사람들의 위에 서 군림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하여 그 자리에 가고 있으니까.

어째서 국회의원의 월급이 상당히 많고 품위 유지비도 받아야 하는것인지 의문스럽다. 정장을 고급 브랜드로 입어야만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걸까?

가성비 좋은 옷을 자주 세탁하며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면 굳이 품위유지비 같은게 필요할까 싶다.

명언을 읽다가 갑자기 이쪽으로 세어버렸나 싶지만 이렇게 생각이 기울었으니 계속 적어보자. 나의 생각도 정리해 보기 위해서.

이렇게 권력이란 이상하게 사람들이 결국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여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어떨까?

더할 수는 있는걸까?

사랑이 풍부한 곳에서는 권력이라는 힘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권력이 가득한 곳에선 사랑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결국 불가한 일인가 싶다.

권력이 없던 사람조차 그 자리를 얻게되면 변한다고 하듯, 사랑이 없던 사람도 사랑하는법을 깨우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면 역시 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권력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품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권력이 줄어드는 대신 사람들의 존경과 진심어린 응원의 마음을 얻는다는 현실로 권력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100% 완벽 할 수 없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 역시 그러하다.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부터 왜 100%완벽한 사람처럼 행세하고 실수는 합리화하며 지우려 할까?

실수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되뇌여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신 권력이 있기 전의 마음을 평생 간직한 채로.

나는 어떤 권력을,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부터 잊지말자.
권력과 사랑을 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택하고
권력도 이용할 줄 알게 된다면 권력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보자.

2020년 06월 27일 일일명언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정교한 작품이라도
결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대략 예술 작품 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하지만 내게도 생각해보면, 글쓰는 일이 그렇지 않나 싶다. 내가 쓰는 글은 일기일 뿐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자서전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회고록 같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보기엔 별볼일 없는 일기, 끄적임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정보가 되고 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행인건 내가 글을 적는 일을 할때엔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는 거랄까.

마음을 담아야하고 무의식 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몰입이 시작되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르게, 생각들이 머리로 안가고 손으로 흘러가며 키보드를 빠르게 쳐내기 시작하는걸 보면 글쓰기를 즐기기도 하면서 감정을 가득히 담아내게 된다.

한 번 쓰고 그냥 업로드 해버리는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나 돌아보고 '뭐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길게 적어놓았는가' 고민해보며 나름의 완성도를 높여나간달까.

글이란 측면에서 보든 미술이란 측면에서 보든, 그 어떤 측면에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낸것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면 다른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감동을 받을 방법은 당연히 없을테니까.

기계와 사람의 차이라면 단연 감정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서비스 산업, 그 중에서도 감정이 들어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처럼 예술작품, 사람의 창의력과 감성이 더해진 어떠한 작품이라면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비행기가 우주까지 돌파하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잊지말자. 혼자 쓰는 일기라도 감성적으로, 감정을 담아 끄적인다면 훗날 누군가에게 읽혀질때 누군가의 낙서가 아니라 귀감이 될만한 글귀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의 일기도 잘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내가 적은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감사한 마음을 품고.

2020년 06월 26일 일일명언

뒤로 갈 생각이 아니거든
절대 뒤돌아 보지 마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링컨 전 미국대통령의 명언도 함께 떠오른다.
나는 천천히 걷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절대 뒤로 가진 않습니다.
-에이브러헴 링컨

천천히 걷기에 다른 이들보다 느려보이고 뒤쳐져보일수는 있지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고 했던 명언. 그리고 느릴지라도 포기하고 뒤돌아가진 않는다는 이야기.

오늘의 명언도 같은 의미로 느껴진다. 뒤로 돌아갈 생각인게 아니라면, 느리더라도 남들보다 쳐져보이더라도 일단 걸어라. 나아가라. 뒤돌아보지 말아라.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은 직접 경험하고 바라보면서 나아온 길이기 때문에 고민 걱정 보다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가득할텐데,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나아가자니 걱정이 앞설것이 분명하다. 그런 와중에 잠시라도 뒤를 돌아본다면 익숙하고 편안한, 이미 지나온 그 길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니 돌아보지 말자. 생각해보면 지나온 길도 걱정이 앞섰지만 지나고 보니 익숙해지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었으니까.

무슨 사정이 생겨서 돌아가야하는게 아니라면, 아프고 힘들더라도 뒤돌아갈 생각을 하기 보단 잠시 멈추어 서서 그 자리에서 쉬었다가 가는게 더 나을 수 있다. 돌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이 길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돌아서는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기회와도 같다.
붙잡으면 그걸 잡고 있는 동안은 도전 할 수 있지만, 돌아서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다음 기회는 언제 어디에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잠시 힘들거나 게을러지는 순간이라면 명심하자. 그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후회가 될지도 모른다는걸.
미래를 생각하며 스스로 택한 순간의 선택 덕분에 평생을 승승장구하며 멋지게 살아갈 것인가
잠깐의 나태함에게 순간의 선택을 내어주고 평생을 후회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2020년 06월 25일 일일명언

소설이 존재하는 유일한 정당성은,
삶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는 데 있다.

-밀란 쿤데라-

소설이 존재하는데에 정당성을 함께 보는규나..음..

소설은 삶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는데에 정당성이 있다 고 한다.

하긴 글이 너무 일상적이고 누구나 겪을법한 일이라면 소설로 생각이나 할까. 누군가의 경험담처럼 생각하겠지. 소설은 그런면에서 무궁무진한 상상과 창조성을 가득 담고 있는것 같다.
기욤뮈소 작가의 책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읽어내려가다가 평소에 느끼지 못해본 전개가 펼쳐지기 때문이니, 더욱 이 명언에 끌리게 된다.

에세이, 자서전은 사람이 스스로 살아오며 경험한 것과 느낀 것들을 적어내려가기에 사람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거나, 나도 힘들었고 그런 기분은 당신만 느끼는게 아니라 대부분이 느끼는 것이라고 다독여주는 책이라면,
소설은 일상에 찌들어있는 사람들이 상상만 해본, 혹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판타지의 세계나 비현실적인 풍경을 생생한 꿈을 꾸는것 처럼 느끼게 해주어 굳어가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말랑말랑 해지도록 만들어준다.

다행히 난 두 부류를 모두 좋아해서 자신감도 얻고 다독임도 받고 말랑말랑 마시멜로우같은 생각의 구름들을 전달 받으며 지내왔다.

근데 요새 세가지 모두 차단된지 오래인듯... 너무 현실 주의, 경제력만 신경쓰느라 날카로운 일상을 살아온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안되는건데.

스스로 읽자고 꺼내든 소설을 펼쳐보자.
그리고 빠져들자.
내 삶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분을 보여줄 감사한 작가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요즘 일상에 찌들었던 스스로를 쉬어가게 해주자.

2020년 06월 24일 일일명언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체스터턴-

사람마다 믿는 기적은 다들 제각각,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기적을 몇번 일으켜온것 같다.

그리고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니, 기적은 '일어났다'기 보단 '만들어' 내거나 '일으켜낸' 것 같다.
기적이란 참 멋진 무언가이지만 결코 혼자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
아주 작은 힘이라도, 사소한 행동이라도 옆에서 해줘야 기적이 꿈틀 거린다는것.

신세계 뿌리가 튼튼한 청년영웅 지식향연의 청년영웅단이 그랬고, 어릴적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낸다며 물집이 잡힐 정도로 손을 튕겨대던 시가기 그랬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기위해 신청한 교환장학생 역시 그간의 내가 여러 분야에서 꿈틀거려왔기 때문일거라 생각이 든다.

요새는 철봉에 매달려 버티기를 시작으로 한개, 한개 반씩 차근차근 턱걸이 횟수를 높여가는 중인데 처음부터 잘할 마음이 아니라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매달리기 부터 했더니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철봉에 가까워지기 위해 쓰는 힘의 크기가 느껴진다는게 신기하다. 이또한 기적을 일으켜내는 중인게 아닐까-?
영영 쓸일 없을 뻔했던 등과 팔 근육들이 움직이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명언과 내 생각들을 적은 일기도 시작할 때엔 이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어느새 내 생각을 깨워내고 생각치 못하던 다양한 발상을 떠오르게 해주고 있다.
이젠 이 일기는 명언에 치중되기보다 명언을 읽고 얻은 인사이트로 내 생각을 적기만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한 아이디어를 얻고 나면 굳이 그 원천을 계속 떠올리기 보다 그 이휴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생각들을 끄적이기로 하자.

자연스럽게. 그리고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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