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14일 일일명언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영화<리틀 포레스트> 中-

부쩍 영화의 명대사, 내가 몰랐던 누군가의 명언을 적을 일이 생기면서 그들의 인생, 그 영화의 줄거리가 궁금해지고 있다. 이렇게 부가적으로 얕지만 넓은 지식이 추가되는 기분.


긴 글을 읽기도 전, 줄거리의 첫 시작이 눈에 띈다.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이라니.

근데 특별하다니.
뭘까 괜찮기에 특별한걸까? 아니면 반어법일까.. 영화니까 우리의 꿈과 희망이 녹아있어서 특별한 청춘인걸까.

궁금한만큼 찾아서 꼭 봐야겠다.

요즘 내가 썩 괜찮지 않아서 그런가ㅜ 하하
절실해지는 청춘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명언으로 돌아보자면, 우리는 너무 팍팍하고 칙칙한 사회생활에 갇혀 사는게 아닐까 싶다. 예전, SG워너비의 <오디너리피플>이라는 노래 '회색빛 건물속에 갇힌 사람들...' 이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분명 새파란 하늘 아래에 지나다니면서 실상은 회색 천장만 하늘인양 매일같이 보며 살아가고 있는것 같으니까

나는 그래도 다양한 천장들을 보며, 출근길엔 나름 새파란 하늘을 일부러 쳐다보며 살아와서 그런지, 항상 언제 어디서든 잘 털고 일어나 여러가지 일을 해온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밝아오는 아침을 만나고 운동을 하면서 지내는데도 살짝 슬럼프에 접어든 느낌이다. 하늘을 보더라도, 흙냄새를 맡더라도 아침마다 운동으로 만나는게 아니라 내게 실질적인 힐링을 주던 무언가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인가보다.

어느새 명언을 재해석했다가 내 식대로 이해를 했다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정리를 한다.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를 기억하고 떠올린다면.'
여기서 이곳은 나에게 힐링이 되는 장소. 혹은 기억.

가장 좋은건 힐링이 되는 장소에서 힐링이 되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러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테고, (대화를 통한게 아니라 스스로의 기억을 떠올리는거니까) 그 혼자만의 시간은 대부분 쉬어야 생기는 여유시간일거야.

우리에게 여유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할까? 대부분 없다고 느끼겠지만 실은 우리가 킬링타임이라 말하는 컨텐츠들로 무수히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없게 만들어버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여유시간은 분명 있다. 그 시간을 핸드폰이 대부분 빼앗아 간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핸드폰을 내려 놓으면 된다.

핸드폰을 내려 놓는 순간 불안함과 걱정스러운 느낌들이 온 몸을 감싸겠지만, 그 기분을 잠시 느끼며 흘려보내고 눈을감아보자. 이정도 되면 눈치챌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을 만드는건 명상에 접어드는 단계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는 어쩌다 명언을 읽고, 옮겨 적고, 그걸 곱씹어보며 이 명언은 곧 명상이다. 라는 결과까지 온걸까. 그건 그냥 '나'라서. 감사하게도 아직 머리가 굳지 않아서. 이제 더는 주변 눈치를 보기 보단 스스로의 마음이 가는데로 살아가고 있어서. 이런 이유들을 들고 보니, 요즘의 내가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알 것 같다. 다만 아직 힐링에 이르지 못했으니 슬슬 움직여봐야겠다. 매일 아침의 운동말고, 내게 힐링을 주는 장소에 찾아가서 멍을 때려야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펼쳐보자.

힐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 거리가 멀든 가깝든, 스스로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만이다. 이 명언은 고향의 향수, 고향의 푸근함으로 돌아가 마음의 평안을 찾아라, 그럼 걱정이 사라질것이다. 라고 말해주지만 내겐 고향으로 가기보다, 정처없이 떠돌며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니까. 혹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녀도 그냥 내버려두고 눈앞의 책에 정신을 팔아버리는 것이니까.

읽지않은 소설책과 읽었지만 너무나 좋았던 자기계발서를 들고 훌쩍 떠나보자. 단 몇시간이라도.

나에게 집중해보자.

2020년 06월 08일 일일명언

어떤 날은 남들을 배려해줄 여유가
없을 때도 있죠.

-영화 <디태치먼트> 中-

어떤 날일까. 남들을 배려해줄 여유가 없을 때. 영화에서 나온 대사인만큼 어떤 영화인지 먼저 한 번 찾아봐야겠다.

"Sometimes we have limited space for others."
-the movie <Detachment>

한글로 번역된 대사를 이렇게 영문으로 함께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부도 되겠지만 이미 번역된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 실제 영화에서 나온 그 속의 언어를 그대로 이해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detachment. 무심하고 거리를 둔다는 의미의 단어. 어떻게 보면 객관성, 공평성을 나타낸다는 단어.

학교 기간제 교사 학생 ...
서로서로가 모두를 필요로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이.
가족도 부모도 아니기에 학생이 엇나간다해도 100% 간섭할 수는 없고 간접적으로나마 학생들의 진로와 미래를 함께 고민해 주어야 하는 관계. 과연 이게 쉬운 일일까? 어찌보면 가족간에도 이런 관계는 참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가족보다는 이런, detachment 한 관계에서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해주는 방법을 많이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너무 심각한 문제는 부모들이 자녀의 앞날을 방목형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입해서 자신의 삶인양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딱 객관적으로. 현재 나이에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대화로 소통해주고 때로는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스레 여길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 명언 처럼, 어떤 날은 남들을 배려해줄 여유가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날에 포함되는 '남들'이란 가족을 포함하기 때문에, 영화 제목처럼, 일부 내용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쨌든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나 자신'일테니까.
처음 이 명대사를 보았을 때에는 어째서, 어떤 일이길래 남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을 때가 있는걸까 궁금했는데 영화부터 검색해보고 어떤 상황일지 함께 떠올려보았더니 답이 나왔다. 내가 남을 배려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해보고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라 한다면 당연히 남들을 배려해줄 수 없으리라. 선택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 성취 모두 나의 것이므로. 그러니 나도 이런 마음 가짐으로 신중하고 주변 사람들도 잠시 거리를 두고 지켜봐주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

여유가 되는 어느 날, 꼭 찾아서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더 생긴 아침이다.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자. 온전한 내 하루를 가졌음과 이른 시간에 열심히 일어나 풍경을 찍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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