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5일 일일명언

소설이 존재하는 유일한 정당성은,
삶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는 데 있다.

-밀란 쿤데라-

소설이 존재하는데에 정당성을 함께 보는규나..음..

소설은 삶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는데에 정당성이 있다 고 한다.

하긴 글이 너무 일상적이고 누구나 겪을법한 일이라면 소설로 생각이나 할까. 누군가의 경험담처럼 생각하겠지. 소설은 그런면에서 무궁무진한 상상과 창조성을 가득 담고 있는것 같다.
기욤뮈소 작가의 책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읽어내려가다가 평소에 느끼지 못해본 전개가 펼쳐지기 때문이니, 더욱 이 명언에 끌리게 된다.

에세이, 자서전은 사람이 스스로 살아오며 경험한 것과 느낀 것들을 적어내려가기에 사람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거나, 나도 힘들었고 그런 기분은 당신만 느끼는게 아니라 대부분이 느끼는 것이라고 다독여주는 책이라면,
소설은 일상에 찌들어있는 사람들이 상상만 해본, 혹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판타지의 세계나 비현실적인 풍경을 생생한 꿈을 꾸는것 처럼 느끼게 해주어 굳어가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말랑말랑 해지도록 만들어준다.

다행히 난 두 부류를 모두 좋아해서 자신감도 얻고 다독임도 받고 말랑말랑 마시멜로우같은 생각의 구름들을 전달 받으며 지내왔다.

근데 요새 세가지 모두 차단된지 오래인듯... 너무 현실 주의, 경제력만 신경쓰느라 날카로운 일상을 살아온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안되는건데.

스스로 읽자고 꺼내든 소설을 펼쳐보자.
그리고 빠져들자.
내 삶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분을 보여줄 감사한 작가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요즘 일상에 찌들었던 스스로를 쉬어가게 해주자.

2020년 06월 24일 일일명언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체스터턴-

사람마다 믿는 기적은 다들 제각각,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기적을 몇번 일으켜온것 같다.

그리고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니, 기적은 '일어났다'기 보단 '만들어' 내거나 '일으켜낸' 것 같다.
기적이란 참 멋진 무언가이지만 결코 혼자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
아주 작은 힘이라도, 사소한 행동이라도 옆에서 해줘야 기적이 꿈틀 거린다는것.

신세계 뿌리가 튼튼한 청년영웅 지식향연의 청년영웅단이 그랬고, 어릴적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낸다며 물집이 잡힐 정도로 손을 튕겨대던 시가기 그랬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기위해 신청한 교환장학생 역시 그간의 내가 여러 분야에서 꿈틀거려왔기 때문일거라 생각이 든다.

요새는 철봉에 매달려 버티기를 시작으로 한개, 한개 반씩 차근차근 턱걸이 횟수를 높여가는 중인데 처음부터 잘할 마음이 아니라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매달리기 부터 했더니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철봉에 가까워지기 위해 쓰는 힘의 크기가 느껴진다는게 신기하다. 이또한 기적을 일으켜내는 중인게 아닐까-?
영영 쓸일 없을 뻔했던 등과 팔 근육들이 움직이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명언과 내 생각들을 적은 일기도 시작할 때엔 이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어느새 내 생각을 깨워내고 생각치 못하던 다양한 발상을 떠오르게 해주고 있다.
이젠 이 일기는 명언에 치중되기보다 명언을 읽고 얻은 인사이트로 내 생각을 적기만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한 아이디어를 얻고 나면 굳이 그 원천을 계속 떠올리기 보다 그 이휴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생각들을 끄적이기로 하자.

자연스럽게. 그리고 꾸준하게

2020년 06월 23일 일일명언

당신이 되고 싶었던 어떤 존재가 되기에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조지 엘리엇-

되고 싶은 어떤 존재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7일에 미리 저장해서 8일 아침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느낌. 이렇게도 좋다)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걸까?

돈 많은 사람
인맥 넓은 사람
유명한 사람

이런것들은 아니란게 느껴진다.

느낌적인 느낌이란게 있는 법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라는건 욕심인거 이제 잘 아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되는 존재?

스스로 살고 싶은대로 살았고
그 와중에 사람들과 어우러졌으며
내가 가진걸 나누고
다른이들이 가진걸 감사히 공유받으며 살아간 존재?

명언처럼만 되어도 좋겠다.

내가 태어날때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울었다.
내가 죽을때 나는 웃고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죽음이란, 아무리 숭고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해도 그를 잃는 사람들에게 슬픔이 자리잡는건 당연할테니까.

그러니 외국의 어느 분도,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관속에 갇힌것 처럼 음성을 녹음해서 장례식을 할때 틀었던거겠지. 슬픔속에 있었겠지만 조금이나마 자신을 유쾌한 사람이었다는걸 잊지 말라고. 그는 이제 땅속에 묻혀 지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테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속엔 늘 쾌활했던 가족, 친척, 이웃, 친구였노라고.

일단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한 준비 중이다. 그럼 목표를 분명히 해야겠지.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

지금 운동 하며 일기 쓰는게 앞으로는 당연한 일상인 존재?
내가 받는 사랑들이 당연한게 아니라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란걸 항상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존재?

이렇게 살아가는, 이런 존재이려면 역시나 내가 먼저 움직이면 된다.

사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는건 나 스스로, 자신이 하는거니까. 그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행동해야겠지.

목표를 세우고 원하는 일을 하고자 움직이는것과 다를것이 없다. 그 목표가 좀더 거대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작은 존재이니까.
큰 존재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존재감을 가진 이가 되려면 일단 스스로를 키워야겠지.

최소한 스스로 생각하고 말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어야 겠다.

2020년 06월 22일 일일명언


이 모든 얘기가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이 순간이 추억은 아니야.
살아있는 순간이야.

-영화 <월플라워> 中-

지금 이 순간은 분명 지금이다.
돌아보면 '지금'도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리지만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은 살아있는 순간이다.

찰나의 순간 같지만 이 시간을 잘 붙잡으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인생이 짧고 길고를 떠나서 사람들은 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 순간들을 추억으로 바꾸어 회상하며 살아간다.

함께한 어느 누구 덕분일 수도 있고
어딘가 여행하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뭔가 강렬한 인상이 필요하고 누군가가 함께했어야 할까?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싶다.

혼자서도 충분히 좋은 추억은 생성해 낼 수 있다.

사실 추억 자체는 자동 생성이다.

그 지나쳐온 수많은 추억들 중에서 '좋은 ' 혹은 '나쁜' 이라는 인식과 느낌으로 추억을 포장해버리는것 뿐.

그와중에 선택받지 못한것들은 종종 꿈에나 나오거나 기억속에서 잊혀지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잊혀지는 추억 역시 좋은 추억일 수 있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일일 수 있다. 단지 너무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니 깜빡, 놓친것일뿐.

그러니 기록하자. 사진으로 찍고 눈에 보이게 두자.

두고두고 보면서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내 모든 시간들이
나의 모든 순간들이

추억으로 저장되고
스스로 좋았던 추억이었노라
원할때마다 돌아볼 수 있도록

2020년 06월 21일

자기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간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알랭 드 보통-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불안에 떠는 사람이다.

그래야, 매순간의 위험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생을 이어나갈테니까.
그리고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 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는나고 한다.

그 불안이란 걱정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안속을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불안 속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불안한지 아닌지 모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계속 움직이고 불안을 느끼며 새로움을 찾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할 수록 불안도 커지긴 하지만, 그만큼 이룰 수 있는 목표의 크기도 커진다.

그만큼 큰 사람이 될것이라는 이야기.

그러니 두려움과 불안에 마냥 떨기만 하지 말자. 어차피 극복해야하고 헤쳐나가야할 삶중의 일부일 뿐이다.

꾸준히 높은 삶의 기준을 목표로 삼고
피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자.
피할 수 없는 불안은 계속 극복해가면서
더욱 큰,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아가자.
어느새 그 불안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증폭시켜주는 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 그 날까지.

그걸 깨닫고 나면 더이상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을 것이다.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고 그 어떤 위험과 걱정이 동반되어 와도 이걸 극복하면 더욱 큰 성취를 해낼 수 있으리란걸 누구보다 잘 알테니까.

2020년 06월 20일 일일명언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밖에 없다.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죽음을 준비한다 라는 개념.
훌륭한 인생을 살기위해, 훗날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감사보다 후회가 더 적을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늘 조심히 지내야 하지만 나 혼자 조심한다고 완벽히 안전하다고도 볼 수 없는 삶이라고들 하는 세상

그 와중에 어쨌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걸 하자는 이야기일테지.

생을 훌륭하게 살아내면, 정말 어떤 안타까운 일이 생기더라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덜할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위험보단 안전함에 가까워 지기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면 죽음을 준비하면서 건강하고 만족감이 넘쳐흐르는 생을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세상은 워낙에 역설적인게 많아서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를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택하는 것일뿐. 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인가부터 이렇게 명언을 적고 내 단상을 아래에 끄적여가는 일상을 만들길 잘한것 같다.

명언에 따라, 그 명언을 읽은 후 내 생각에 따라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풍부하게 느끼기 때문에.

명언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걱정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유가 있는 일이니 '그저 넌 네 갈길 잘 가면 된다.' 라고 말해주는것 같달까.

이렇게 시작할 때에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싶던 마음들을 이런 순간마다 인정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역시나 좋다.

오늘도 참 좋은 시간이다. 좋은 하루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게 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사라졌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훌륭한 인생의 일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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