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9일 일일명언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권력의지가 없고,
권력이 우선하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

-칼 융-

권력. 사람에게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심어주는 힘.
누군가에게 꼭 권력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갈까-?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무언의 합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데 이걸 공표하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걸까?

우리는 국가의 어떤 선택과 결정을 맡기기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투표해서 뽑고, 그들은 국민의 다수가 선택하여 나라를 위해 일한다.
근데 왜 그들은 선거철에만 국민에게 잘보이려하고 선거가 끝난 후엔 권력이라는 힘만 휘두르며 살아가고 싶어할까?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다수가 그런 현실이기에 속상하기도 의문스럽기도한 현실.

어찌보면 권력이라는 것을 잘 못 쥐어주는 경우 그것을 사랑과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 못하고 사랑은 잊은채 권력만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미 전제가 잘 못 된게 아닐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가 되어, 도와 시, 그 지방자치단체의 대표가 되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월급과 처우와 사람들의 위에 서 군림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하여 그 자리에 가고 있으니까.

어째서 국회의원의 월급이 상당히 많고 품위 유지비도 받아야 하는것인지 의문스럽다. 정장을 고급 브랜드로 입어야만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걸까?

가성비 좋은 옷을 자주 세탁하며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면 굳이 품위유지비 같은게 필요할까 싶다.

명언을 읽다가 갑자기 이쪽으로 세어버렸나 싶지만 이렇게 생각이 기울었으니 계속 적어보자. 나의 생각도 정리해 보기 위해서.

이렇게 권력이란 이상하게 사람들이 결국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여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어떨까?

더할 수는 있는걸까?

사랑이 풍부한 곳에서는 권력이라는 힘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권력이 가득한 곳에선 사랑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결국 불가한 일인가 싶다.

권력이 없던 사람조차 그 자리를 얻게되면 변한다고 하듯, 사랑이 없던 사람도 사랑하는법을 깨우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면 역시 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권력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품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권력이 줄어드는 대신 사람들의 존경과 진심어린 응원의 마음을 얻는다는 현실로 권력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100% 완벽 할 수 없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 역시 그러하다.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부터 왜 100%완벽한 사람처럼 행세하고 실수는 합리화하며 지우려 할까?

실수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되뇌여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신 권력이 있기 전의 마음을 평생 간직한 채로.

나는 어떤 권력을,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부터 잊지말자.
권력과 사랑을 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택하고
권력도 이용할 줄 알게 된다면 권력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보자.

2020년 06월 27일 일일명언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정교한 작품이라도
결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대략 예술 작품 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하지만 내게도 생각해보면, 글쓰는 일이 그렇지 않나 싶다. 내가 쓰는 글은 일기일 뿐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자서전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회고록 같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보기엔 별볼일 없는 일기, 끄적임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정보가 되고 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행인건 내가 글을 적는 일을 할때엔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는 거랄까.

마음을 담아야하고 무의식 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몰입이 시작되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르게, 생각들이 머리로 안가고 손으로 흘러가며 키보드를 빠르게 쳐내기 시작하는걸 보면 글쓰기를 즐기기도 하면서 감정을 가득히 담아내게 된다.

한 번 쓰고 그냥 업로드 해버리는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나 돌아보고 '뭐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길게 적어놓았는가' 고민해보며 나름의 완성도를 높여나간달까.

글이란 측면에서 보든 미술이란 측면에서 보든, 그 어떤 측면에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낸것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면 다른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감동을 받을 방법은 당연히 없을테니까.

기계와 사람의 차이라면 단연 감정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서비스 산업, 그 중에서도 감정이 들어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처럼 예술작품, 사람의 창의력과 감성이 더해진 어떠한 작품이라면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비행기가 우주까지 돌파하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잊지말자. 혼자 쓰는 일기라도 감성적으로, 감정을 담아 끄적인다면 훗날 누군가에게 읽혀질때 누군가의 낙서가 아니라 귀감이 될만한 글귀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의 일기도 잘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내가 적은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감사한 마음을 품고.

2020년 05월 31일 일일명언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제노-

자연은 애초에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어찌보면 지구의 본 주인인 셈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나타날지도 얼마 안되었으면서 자연의 위인것 처럼 구는걸까. 놀랍게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자연은 왜 좀처럼 화를 내지 않을까.
화를 내는것 처럼 보이던 태풍과 쓰나미 등등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해하려는 것보다 경고를 주려는 용도가 아닐까?
어느 이상의 개발을 이어간다면 자연의 경고를 듣게 되는것 처럼.
분명 우리는 빠르고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자연에게도 그럴까?

이번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단순히 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조심해야한다는 경고가 아니라, 코로나19로 인간은 불편해졌지만 자연과 동물 식물들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성이라고 생각한 미세먼지도 인간이 공장 🏭 가동을 멈추었더니 맑은 하늘로 나타나주었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베네치아는 온갖 물고기들이 마법처럼 몰려들었다. 그럴리 없을거라 생각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조금이나마 코로나 19가 완화되어서, 혹은 완치 가능한 백신이 나와서 사람들이 이전의 일상처럼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 순간을 기억하긴 할까?

부디, 다른건 몰라도 주에 1회, 월에 2회씩 만이라도 지구를 위하여 모두가 멈추어서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는건 어떨까.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뿌옇던 하늘이 파랗게 칠해져서 그림같을 모습을 바라보면.

모두가 그런다는건 정말 어렵겠지만, 나라도 무언가 지구를 위해 할 일을 해보아야 겠다. 분리수거도 열심히, 주변 환경 정리를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어 지내야겠다.

친구하고 싶은 자연에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매일매일 건내어 줄수있도록.

2020년 05월 30일 일일명언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

-데이비드 흄-

시인 김춘수님의 <꽃> 이라는 시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명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기록하고보니 또 떠오르는 또다른 명언.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이야기
"한 사람이라도 큰 성당의 이미지를 품고 돌무더기를 본다면,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돌무더기가 아니다."

이 명언들, 시에서 알 수 있는게 무엇일까.
나는 저 비슷한 명언과 시들을 각각 읽을때마다, 문득 떠올릴 때마다 내 머릿속 생각들을 돌아보곤 한다. 무언가를 선입견에 사로잡혀 바라 본 적은 없는지.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생각하기를 게을리해서 더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한건 아닌지. 스스로 마음먹는대로 세상을 살아가자고 마음먹었으면서 내 주변에 있는 참 많은 것들의 의미를 무심코 지나쳐가며 살아온것 같다. 시선을 돌릴때마다 만나는 풍경들, 돌, 꽃, 하늘 이 모두가 매일 똑같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가 참으로 대단한 것인데 나는 그걸 '당연하다'여기며 살아온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아무리 바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낼 수 있고, 가족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낼 수 있는 현실. 만약 바쁘다며, 자기는 그렇게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그렇게하지 않아왔다면, 노력은 해봤는지 묻고 싶다. 잠깐 연락 했을때 상대방이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분이 좋아질지를 생각 해봤는지 묻고 싶고, 정말 너무나도 바빠서 연락도 못했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뉴스, 카카오톡을 보는 시간 조차 없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며 있는 순간조차 바쁜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없다고 살아간다. 사실 핸드폰에 빼앗기는 시간만 조절해도 안부연락이든, 스스로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런 일이든, 더욱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안하는걸까 못하는걸까. 그건 그 사람만 알겠지.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하는데 사람의 아름다움 역시 그걸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하지 않을까.
당연히 생각하던 하늘을 자주 바라보고 익숙하다고 생각해 놓치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습관을 만들어보자. 분명 전보다 쾌활하고 기분좋은 시간들이 늘어날 것이다. 처음은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점차 쉽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출퇴근 길에 피어있던 무명의 꽃에게, 내가 잘 모르던 들풀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매일매일의 출퇴근 시간을 기다리게 될것이고 산책길에 만난, 쌓여있던 돌탑에 내 마음을 담은 돌을 하나 함께 얹으면 굳이 종교활동을 위해 어딜 가지 않더라도 산책길에 많은 소원을 빌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오래 하고 싶다면 핸드폰에게도 이름을 지어줘보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우리고 출근을 하면 일하기가 싫은데, 핸드폰 역시 그렇지 않을까? 전에는 베터리라도 바꿔 끼워야 해서 돌아가며 쉴수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일체형이라서 주인이 잠드는 시간만 쉴 수 있는 가혹한 현실. 그마저 푹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체로 충전을 당해야 하는 현실. 그 핸드폰의 현실을 함께 생각해주다 보면 내가 혼자 핸드폰을 줄인다는 기분 보다 핸드폰과 함께 멍때리고 쉬어간다고 여길 수 있으리라ㅡ. 핸드폰에게도 쉴시간을 주고 스스로의 눈에게도 피로를 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자.

주변 모든 사물에 마음을 담아 바라보고, 고마워하며 살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자, 주변 환경 없이는 제대로 살기 힘들어하는, 아직은 약한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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