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03일 일일명언

당신이 원하는 것은
두려움 저편에 존재한다.

-잭 캔필드-

내가 원하는게 무엇이길래
두려움 저편에 가 있는걸까

글을 열심히 적어보려는 지금,

글이 안나와서 고민이다.

아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너무 서두르진 말자. 급할 수록 돌아가는 법.

이미 잘하고 있고 머릿속이 촉촉해지도록, 말랑말랑해지도록 잘 건드리고 있으니 재촉하진 말자.

분명 적절한타이밍에 또 많은것을 쏟아내 줄테니까.

지금의 나는 두려움 저편에 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모르는건지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은 이미 저편에 가 있는것 같다.

나는 여러 두려움들을 극복하며 살아왔고, 가끔은 잘 해결하며 지내왔으니까. 지금은 무슨 두려움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다며 나아가고자 하는데, 그렇게 나아가는 길의 방향을, 갈피를 못잡고 있는듯 싶다.

아쉽게도 너무 오랜만에 이런 길 위에 올라섰고, 아직 모르는것도 너무나 많다. 그동안 나태해서 준비하지 않은것도 너무 많은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는데 그건 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쉬었다면 그만큼 몸에게 에너지를 비축해주었을테고 무리했다면 그만큼 몸이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지녔을테니까.

지나간 걸 후회 말고 다가올 일을 준비하자.
이미 3개 중 2개는 어느정도 작성을 했으니 1개의 나머지에 대해서 써내려가보자.
글이란 원래 한 번에 쓰여지는게 아니라, 일단 막무가내의 글이라도 적어두고 수 십, 수 백번 고쳐서 쓰는 것이니까.

스스로 적어내려가는 글이 관련 없을거라며 넘겨짚기 전에, 그럼 그 얘기 말고 쓸 말이 따로 더 있는지 돌아보자 스스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의 글을 부정하지 말고 오글거려하지 말자. 오글거리더라도 일단 끄적이고 보자. 분명 어디에든 쓸 수 있을테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두려움 저편, 저 두려움을 넘어서야 만날 수 있으니까. 그 두려움을 넘어서기 까진 무슨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부딪히자. 직접 경험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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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02일 일일명언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게는 날개가 있는데.

-프리다 칼로-

이미 썼던 명언이지만 스케줄러에 나온대로 해보자며 끄적끄적

이제 발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정말 소중한 발에 대해 돌아보자.

일단 걸으며 이 글을 쓰고 있고, 매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이동하고, 운동장에 오면 걷던가 뛴다.

이렇게 몸으로 하는 동사는 대부분 발이 하는 일들이네.
아침은 특히 발이 없었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진다.

악동뮤지션도 우리가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그 노래를 참 감명깊게 듣곤 했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었구나 싶다.

와중에 내가 감사하며 사는 이 생활과 삶이 누군가에겐 돌아갈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져서 마음이 무겁다. 이미 그 삶에 적응했을것이고 그 삶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테니, 무거운 걱정만 쌓지 말고 일상에서 내가 도울일이 생기면,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면 꼭 도와드릴 수 있는 곳에서 있자. 절대 외면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몸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니 이렇게 진지해져버린다. 그만큼 소중하고 감사해야하는거니까, 열심히 운동하고 먹는거 챙기면서 오래오래 튼튼하게 잘 관리해주자.

이렇게 살 수 있는건 다 이 몸들이 제대로 움직여주고 있는 덕분이니까

2020년 07월 01일 일일명언

우리가 날 수 있을까?

-라이트 형제

이 물음을 가졌던 형제 덕분에 우리가 지금 국제사회를 살고 있는거겠지-?

하늘을 날 수 있을지 물음을 품었던 사람들이, 그 당시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면서 생긴 나비효과.

글로벌 시대가 된 지금.

아직까지도 배를 타고 위대한 항해를 해야했다면, 배가 좀 더 고급스럽고 대중적으로 변했으려나-?

비행기에겐 어쨌든 시간 단축이라는 큰 이점이 있기에 배만 있었을 상황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리라.

바다든 하늘이든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고 그런면에서 땅 위의 도로라고 큰 차이가 있는것은 아니다.
사고율로 보면 비행기가 가장 안전하다고들 하니까.

2020년. 지금의 나는 어떤 물음을 품고, 어떤 물음표를 머리와 마음에 품어야 할까.

최소한 그 물음이 불가능에 가까울거라고 예상되더라도, 주변에서 미친짓이라고 할지라도 내 의지에 집중하자.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그 어떤 주변 상황도, 그 일의 환경도 일단 생각치말자. 원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덤벼든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테니까.

라이트 형제의
우리가 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
너, 날 수 있어? (나 일 수 있어 ?)
라는 언어유희로 재탄생한것 처럼
내가 시작하는 일이 처음엔 미친짓이라도 돌아보면 분명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무언의 변화와 재미를 던져줄 수 있을테니,
최소한 스스로의 물음은 외면하지 말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답하고 긍정의 행동으로 그 물음을 함께 해결해버리자.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생각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과 다를바 없으니까.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원한다고 느꼈다면 실행에 옮기자. 얼마나 걸릴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먼저 짚어보려말고 사서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날 수 있으니까

2020년 06월 30일 일일명언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번째 봄이다.
-알베르 카뮈-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2020년의 진짜 봄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기세 없는 2020년 07월 15일 아침.

봄, 그리고 가을.

어찌보면 불과 작년까진 당연한 계절이었던 것이 어느새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알베르 카뮈라는 분에게 계절은 시간지나면 다가오고, 자연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라 생각한것일까-?

나도 계절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기도,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자연은 그 누구에게든 긍정도 부정도 아닌듯 하다. 그저 세상의 순리대로 존재하는것일뿐

그러니 공룡도 멸망하고 수많은 지구의 모습들이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른게 아닌가.

인간이라고 그걸 거스를수는 없을듯 싶다. 어떻게든 거스르겠다고 하우스를 짓고, 바다를 흙으로 메우고 있지만 그 기반 자체가 자연이라는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들.

제주도의 자연이 그대로라서 사람들이 그 순수한 자연을 보러 여행오길 바라는 모습과 같다. 자연도 있는 그대로 두면서, 제발 지속가능한 개발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어째서 지속가능한척하면서 결국 이득을 챙기기 위해 개발을 위한 개발을 일삼고, 환경은 뒷전인걸까.

결국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린 모습이지만
결국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깨달을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세상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변화를 모색하는 한가지 조언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 공존해 살아가는게 어떨까.
이번에 코로나19가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바이러스이지만 지구와 자연 환경에는 치유제가 된 것처럼.

우리 나름대로 백신을 찾되, 우리로 인해 안개속에 가려져버렸던 자연에게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한다고 나역시 일회용품 당장 안쓰고 샴푸같은걸 안쓰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 그러니 일단 할 수 있는거라도 하며 살자.

귀찮아도 분리수거는 무조건 제대로 하고 일회용품, 비닐봉투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자.

아직 나도 부족한것 투성이니 노력하자.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어 당연한 일이 될때까지

2020년 06월 29일 일일명언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권력의지가 없고,
권력이 우선하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

-칼 융-

권력. 사람에게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심어주는 힘.
누군가에게 꼭 권력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갈까-?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무언의 합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데 이걸 공표하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걸까?

우리는 국가의 어떤 선택과 결정을 맡기기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투표해서 뽑고, 그들은 국민의 다수가 선택하여 나라를 위해 일한다.
근데 왜 그들은 선거철에만 국민에게 잘보이려하고 선거가 끝난 후엔 권력이라는 힘만 휘두르며 살아가고 싶어할까?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다수가 그런 현실이기에 속상하기도 의문스럽기도한 현실.

어찌보면 권력이라는 것을 잘 못 쥐어주는 경우 그것을 사랑과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 못하고 사랑은 잊은채 권력만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미 전제가 잘 못 된게 아닐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가 되어, 도와 시, 그 지방자치단체의 대표가 되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월급과 처우와 사람들의 위에 서 군림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하여 그 자리에 가고 있으니까.

어째서 국회의원의 월급이 상당히 많고 품위 유지비도 받아야 하는것인지 의문스럽다. 정장을 고급 브랜드로 입어야만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걸까?

가성비 좋은 옷을 자주 세탁하며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면 굳이 품위유지비 같은게 필요할까 싶다.

명언을 읽다가 갑자기 이쪽으로 세어버렸나 싶지만 이렇게 생각이 기울었으니 계속 적어보자. 나의 생각도 정리해 보기 위해서.

이렇게 권력이란 이상하게 사람들이 결국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여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어떨까?

더할 수는 있는걸까?

사랑이 풍부한 곳에서는 권력이라는 힘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권력이 가득한 곳에선 사랑이 느껴진 적이 없기에 결국 불가한 일인가 싶다.

권력이 없던 사람조차 그 자리를 얻게되면 변한다고 하듯, 사랑이 없던 사람도 사랑하는법을 깨우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면 역시 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권력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품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권력이 줄어드는 대신 사람들의 존경과 진심어린 응원의 마음을 얻는다는 현실로 권력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100% 완벽 할 수 없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 역시 그러하다.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부터 왜 100%완벽한 사람처럼 행세하고 실수는 합리화하며 지우려 할까?

실수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되뇌여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신 권력이 있기 전의 마음을 평생 간직한 채로.

나는 어떤 권력을,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부터 잊지말자.
권력과 사랑을 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택하고
권력도 이용할 줄 알게 된다면 권력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보자.

2020년 06월 27일 일일명언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정교한 작품이라도
결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대략 예술 작품 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하지만 내게도 생각해보면, 글쓰는 일이 그렇지 않나 싶다. 내가 쓰는 글은 일기일 뿐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자서전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회고록 같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보기엔 별볼일 없는 일기, 끄적임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정보가 되고 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행인건 내가 글을 적는 일을 할때엔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는 거랄까.

마음을 담아야하고 무의식 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몰입이 시작되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르게, 생각들이 머리로 안가고 손으로 흘러가며 키보드를 빠르게 쳐내기 시작하는걸 보면 글쓰기를 즐기기도 하면서 감정을 가득히 담아내게 된다.

한 번 쓰고 그냥 업로드 해버리는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나 돌아보고 '뭐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길게 적어놓았는가' 고민해보며 나름의 완성도를 높여나간달까.

글이란 측면에서 보든 미술이란 측면에서 보든, 그 어떤 측면에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낸것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면 다른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감동을 받을 방법은 당연히 없을테니까.

기계와 사람의 차이라면 단연 감정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서비스 산업, 그 중에서도 감정이 들어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처럼 예술작품, 사람의 창의력과 감성이 더해진 어떠한 작품이라면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비행기가 우주까지 돌파하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잊지말자. 혼자 쓰는 일기라도 감성적으로, 감정을 담아 끄적인다면 훗날 누군가에게 읽혀질때 누군가의 낙서가 아니라 귀감이 될만한 글귀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의 일기도 잘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내가 적은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감사한 마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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